가족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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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목사(세인트하우스평택)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지난 9월 20~21일, 안성 고삼재 연수원에서는 가족행복학교와 부락복지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가족 캠프가 열렸다. 이 캠프에는 부락복지관의 느린 학습자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학생들의 가족이 초청되었고, 총 11가정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했다. 일반 시민 가정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특수한 가족 구성이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연대와 화합의 모습이 드러났다.

느린 학습자란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동을 말하며, 대개 초등학생들이 많다. 캠프에서는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강의안도 사전에 맞춤 준비를 했다. 현장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이어졌다. 어떤 아버지는 느린 학습자인 자녀를 따뜻하게 안아 주며 강의에 동참하도록 격려했고, 한 어머니는 집중을 잃은 아이를 부드럽게 손잡고 자리로 이끌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강사가 새로운 동작을 제시할 때마다 부모들은 먼저 시범을 보이고 “잘한다”, “괜찮아”라는 응원을 보내며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가족 전체가 하나의 팀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나는 그 순간, 가족 연대의 힘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기다려 주며 함께 걷는 공동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기다려 주면 성장할 수 있다.” 이 메시지는 장애가 아니라 성장 속도의 차이일 뿐임을 보여 주었다.

이 경험은 가족 내부를 넘어 사회 공동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사회 구성원 중에는 소외되거나 배제된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기다림과 격려, 기회를 제공하는 연대의 정신이야말로 성숙한 공동체를 만드는 힘이다.

실제로 평택 YMCA 하나센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 중 노래에 관심 있는 이들을 모아 합창단을 조직했고, 시민 동요제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느리지만 천천히 사회 속에 자리 잡아 가는 모습은 가족 연대를 지역사회로 확장한 사례다. 마찬가지로 다문화가족, 독거노인, 노숙인 등 우리 곁의 약자들도 가족처럼 품을 때, 지역사회는 더 따뜻하고 품격 있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네덜란드의 가족사회학자 펄 다이크스트라(Pearl Dykstra) 교수는 “세대 간 연대는 가족의 건강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말한다. 이는 가족 내부의 정서적 결속을 넘어 서로를 실제로 지지하고 돕는 체계적 연대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 교육학자 앤 이시마루(Ann Ishimaru)는 교사와 가족이 연대할 때 단순한 협력을 넘어 공동 목표를 중심으로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고 강조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이런 연대의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후쿠오카현 오무타 시는 고령화와 치매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치매 친화 커뮤니티(Dementia Friendly Community)’를 조성했다.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 상점이 협력해 치매 환자와 가족을 사회 구성원으로 포용하고, 교육과 커뮤니티 카페를 통해 고립되지 않도록 돕는다. 이는 가족 연대가 지역사회로 확장된 좋은 사례다.

이번 캠프에서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성숙한 사회는 다름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걸으려는 연대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우리 가정 안에도, 또 사회 속에도 더 많은 기다림과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작은 응원과 동행을 건네는 일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내일을 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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