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날(CDI)은 J.존의 기고글인 ‘큰 양귀비 증후군(tall poppy syndrome)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을 망치게 두지 말라’(Don't let the tall poppy syndrome ruin your experience of the Kingdom of God)를 최근 게재했다.
J. 존은 목사, 연사,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 팟캐스트인 ‘J.John Podcast’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처음 “키 큰 양귀비 신드롬(Tall Poppy Syndrome)”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원예사가 불평할 법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가위를 가져와야겠네!” 그러나 곧 이것이 정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 큰 양귀비 신드롬’은 남보다 두드러지거나 조금 더 앞서거나 눈에 띄는 사람을 시기하고, 비난하며, 깎아내리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런 마음은 곧 이렇게 속삭인다: “쟤가 뭔데 저렇게 잘난 척이야?”, “쟤 요새 좀 거만해진 것 같아.”, “저 사람 좀 코를 납작하게 해줄 필요가 있어.”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 표현은 20세기 호주에서 생겨났다. “군중 속에서 너무 튀지 마라”라는 문화적 경계심에서 비롯된 말이다. 불안한 마음이 만든 일종의 국가적 좌우명: “신발이 너무 크면 안 된다(분수 넘지 마라).”
하지만 그 뿌리는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가 리비우스에 따르면, 타르퀴니우스 왕은 경쟁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말 대신 정원을 거닐며 가장 큰 양귀비 꽃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세상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누군가 승진하면: “어떻게 된 일이지?” ▲누군가 새 차를 사면: “돈은 어디서 났대?” ▲2월에 해변 사진을 올리면: “잘난 척하네.” 등의 모습이 보인다.
소셜미디어는 이 신드롬을 가속화시켰다. 우리는 스크롤을 내리며 비교하고, 속으로 부글거린다. 사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그것은 질투, 불안, 그리고 남의 성공이 필자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는 숨겨진 두려움 때문이다.
잠언 14장 30절은 분명히 말한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곱씹어 보라. 시기는 단순히 성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까지 해친다.
교회 안에서도 스며든다
솔직히 말하면, ‘키 큰 양귀비 신드롬’은 예배당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예배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봉사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다.
초청 설교자가 오면 누군가 중얼거린다. “별 내용 없네.” 새로운 사역이 성장하면 누군가 속삭인다. “얼마나 가겠어.” 이웃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면 누군가 말한다. “복음을 희석시키는 거지.” 이처럼 우리는 때로 신실함이 아니라, 질투심을 ‘분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행동한다.
야고보서 3장 14–16절은 이렇게 경고한다.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진실이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예수님은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들어 올리셨다.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가난한 과부의 헌신을 강조하셨으며,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에 대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위도 전해질 것”*이라 하셨다(마가복음 14:9).
또한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늦게 온 이들도 같은 품삯을 받자 먼저 온 이들이 불평했다.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태복음 20:15).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불공정이 아니라 은혜였다.
세 가지 영적 해독제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감사: 감사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주님, 저 사람도 감사합니다. 필자도 감사합니다.” 감사와 시기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겸손 :겸손은 누가 인정받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께서 영광 받으시면 된다. 바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빌립보서 2:3)고 말했다.
격려: 다른 이를 깎아내리는 대신 세워주라.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하시는 일을 기뻐하라. 바울의 권면처럼, “서로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 (데살로니가전서 5:11).
교훈과 경고
교훈: 하나님 나라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경고: 키 큰 양귀비를 자르다 보면, 결국 밭은 그루터기만 남는다.
교훈: 다른 이의 은사는 위협이 아니라 축복이다.
경고: 시기는 부흥을 보지 못하게 하고 열매에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하나님은 비평가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를 찾으신다. 흠을 잡는 자가 아니라 열매 맺는 자를 귀히 여기신다.
마지막 생각
세상은 말한다. “끌어내려라.”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들어 올려라.” 세상은 말한다.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 은혜는 네게 족하다.”
우리는 ‘양귀비 잘라내는 사람’이 아니라 ‘양귀비 응원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이가 꽃필 때 박수치며, 하나님께서 필자를 심으신 자리에서도 결국 꽃피우실 것을 믿어야 한다.
기도
주 예수님, 필자의 마음에 시기와 교만과 비교가 자리잡은 순간들을 용서하소서. 원망을 뿌리 뽑고, 감사의 씨앗을 심으소서. 다른 이를 기뻐하고, 넉넉히 격려하며, 주께서 부르신 정체성 안에서 필자가 안식하게 하소서.
저를 허무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잘라내는 자가 아니라 지지하는 자로 만드소서. 은혜 안에서 자라가며 다른 이들을 응원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