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혁주의연구소(소장 오덕교 목사)가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에서 ‘초기 내한 선교사 탐구 시리즈 8: 곽안련 선교사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예배, 논문발표 순으로 진행됐으며 예배에선 오덕교 목사의 인도로 현창학 교수(합신대학원 석좌교수)가 대표기도를 드렸다. 이어 박성일 교수(GATE 원장/미국 기쁨의 교회 담임 목사)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스바냐 3:11-13)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정효제 목사(한국개혁주의 연구소 이사장)가 축도했다.
이어진 논문발표는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님송석좌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박응규 교수(ACTS 명예)가 ‘곽안련 선교사의 목회와 신학교육에 대한 역사적 고찰: 숭동교회와 평양신학교를 중심으로’, 조진모 교수(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가 ‘곽안련의 <설교학>에 담긴 신학 사상의 특징’, 이신열 교수(고신대학교 조직신학)가 ‘곽안련의 직분론’이라는 주제로 각각 강의했다.
박응규 교수는 “곽안련(찰스 알렌 클라크, 1878~1961)은 한국 장로교회의 기초를 다진 중요한 인물로, 복음과 신학, 그리고 네비우스 선교 방법을 한국 땅에 뿌리내리게 한 선교사였다. 그는 단순히 목회자일 뿐 아니라 교육자였으며, 송도학교와 평양여자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신학적 훈련을 통해 복음의 씨앗을 확실히 심었다. 1902년 입국 이후 20여 년간 한국교회를 섬기며 전도, 목회, 성경 교육에 전념했고, 그 결과 한국교회의 토대 위에 말씀 중심의 목회와 신학교육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사역은 ‘한국교회 목사들의 목회자’라는 평가를 남길 만큼 분명한 본보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어 “특히 평양신학교 교수로서 설교학, 목회학, 기독교 교육 등을 가르치며 수많은 목회자를 배출했다. 그는 교회를 세우고 신학교를 발전시켜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이 개혁주의 복음주의 신앙 위에 서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과 함께 신학적·영적 기초를 놓았고, 그 열매는 훗날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져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곽안련의 사역은 단지 한 시대에 머문 것이 아니라, 36년간의 헌신을 통해 후대의 목회자와 선교사들에게 신앙과 신학의 모범을 남겼다. 그는 신학자이자 교수, 목회자이자 선교사로서 교회의 신앙적 뿌리를 세운 인물이며, 제1세대 선교와 제2세대 교회의 다리를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발자취는 오늘날까지도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붙드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조진모 교수가 ‘곽안련의 <설교학>에 담긴 신학 사상의 특징’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조 교수는 “곽안련의 <설교학>은 단순히 서구의 설교학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현실과 신학교육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토착화된 산물이다. 그는 존슨의 삼중 구조, 교리적 권위, 문화적 적응, 영혼 구원을 충실히 받아들이면서도 언어와 수사, 결단 중심의 목적 운용, 교육과 현장 결합을 통해 이를 한국 강단에 지속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곽안련은 구파와 신파의 대립을 넘어 양자의 장점을 통합하여, 교리적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청중의 회심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살아 있는 설교를 제시하였다. 이는 곽안련 개인의 성취를 넘어 이후 한국 장로교 강단 전체의 전통으로 확산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이미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에 뿌리를 둔 균형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칼빈이 성경과 교리의 엄밀성을 지키면서도 설교를 통해 삶과 문화 속에 신앙을 적용했던 것처럼, 곽안련은 이를 한국적 상황에 구현해낸 것이다. 결국 그의 <설교학>은 국제적 개혁주의 신학의 대화 속에서 한국 설교학이 자리 잡게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동시에 이는 설교가 교리적 정통성이나 감정적 열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권위와 적응, 목적의 삼중 구조 안에서 균형과 생명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학적 교훈을 오늘에도 전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설교학을 온전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초판과 개정판을 면밀히 비교하여 변화된 부분과 그 영향력을 살펴야 하고, 곽안련 이후 신학교 교재와 강단 교육의 계보를 추적해 그의 영향이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곽안련의 <설교학>은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구파와 신파의 조화를 담아낸 맥코믹 전통의 결실이자 한국 강단에 뿌리내린 하나의 신학적 전통으로 더욱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신열 교수가 ‘곽안련의 직분론’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교수는 “곽안련의 직분론은 전통적인 성경 해석의 틀을 넘어서 교회법적·신론적·개혁적 접근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네비우스의 선교정책, 곧 삼자 원리(자립, 자전, 자치)의 영향을 받아 목사, 장로, 설교자, 보좌자, 인도자의 역할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특히 목사의 직분을 지도자이자 설교자, 하나님의 사람으로 규정하며 교육과 독서를 통한 자기 훈련을 강조하였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 직무를 수행하는 차원을 넘어, 목회자가 신학적으로 성숙해야 교회가 바로 선다는 확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장로 직분에 대해서는 교회헌법과 교회정치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강하게 나타났다. 곽안련은 장로의 자격과 선출 과정, 그리고 이를 위한 준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헌법 속에 담긴 실질적 기준들을 중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네비우스와의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네비우스가 장로를 단순한 보좌적 직분으로 이해한 반면, 곽안련은 장로를 교회의 실제적 운영과 지도에 참여하는 존재로 보았다. 이는 장로직을 단순히 제도적 기능이 아니라 교회의 신학적 책임과도 연결시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한 곽안련은 조사와 영수 같은 임시직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다. 네비우스가 인도자와 조력자를 선교사 아래 종속적 개념으로 이해했던 것과 달리, 곽안련은 이들을 교회 안에서 독립적 사역을 담당할 수 있는 직분으로 인정하였다. 특히 그는 조사와 영수를 항존직과 구분되는 임시직으로 보되,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중요한 역할로 이해하였다. 이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 맞는 직분 제도를 신학적으로 재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단순히 제도적 규칙에 머물지 않고 교회의 사역과 연계된 직분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