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17일 서울 중구 소재 은행회관에서 ‘혐오표현 판단 기준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혐오표현의 규제와 표현의 자유 보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지 고민을 거듭해 왔다. 최근 인권위에는 장애인, 여성, 이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 관련 진정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며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권위는 사건 처리의 일관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혐오표현의 개념 정의를 인권침해나 차별의 판단기준으로 직접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 그 정당성과 비례성 심사의 기준 등을 보완하여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혐오표현 규제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있었다. 백은석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혐오표현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기본적 입장을 취하며, 예외적인 경우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표현의 규제를 허용하고 있다”며 “왜냐면 표현의 자유가 진실 추구에 이르는 첩경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법은 전반적으로 표현에 대한 규제를 부정적으로 보아 왔다. 일례로 인종주의적 발언을 혐오표현으로 규정하고 제한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50년대까지 인종주의적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주 형법을 합헌이라 판시한 경우가 있었다(Beauharnis v. Illinois(1956))”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 연방대법원을 위시한 미국 사법부는 혐오표현의 규제에 대해 매우 분명히 부정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혐오표현 규제를 반대하는 측 주장이 사법부를 설득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이들의 주요 주장은 첫째, 인종주의적 혐오표현의 원인은 백인우월주의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무지의 소산으로 인종주의는 혐오표현을 제한하고 규제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오히려 그 추함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사회적 지탄과 교육을 통해 교정돼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둘째, 무엇이 혐오표현인지 명확한 정의가 어려운 가운데 규제하게 되면 기준의 모호성으로 규제 권력 주체에 의한 자의적·선별적 규제가 될 수 있다”며 “셋째, 개인과 집단이 혐오표현으로 받은 감정을 표현 자체를 제한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차지하는 미국적 헌법가치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혐오표현 규제 반대 주장은 사법부를 설득했다고 볼 수 있다(Cohen v. California(1971))”고 했다.
백 교수는 “미국법의 입장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부정하기보다 그 해와 악이 표현의 자유에 부여하는 근본적인 헌법가치에 비춰 상대적으로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피해자 개인이나 집단이 당하는 상처는 미국적 정치공동체의 상호관계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국가나 기관에 의한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미국법은 부정적 입장을 택함과 동시에 혐오표현 피해자에 의한 민사적 규제도 부정적임을 예시하는 연방대법원 판례도 있다”며 “일례로 웨스트보로 침례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은 동성애를 허용하는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해외파견 미군들이 죽어서 돌아온다는 취지의 표현 행위를 전물 군인의 장례식장 인근에서 했다. 이들을 상대로 군인 가족들은 ‘고의에 의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근거로 피고들의 손을 들어줬다(Snyder v. Phelps, etc(2011))”고 했다
반대로 혐오표현 규제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송현정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혐오표현도 사상 견해의 외부 표명이라는 점에서 보호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타인을 비하하는 목적의 표현은 인격권 보호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형법 명예훼손죄(제307조)와 모욕죄(제311조), 민법 불법행위책임(제750조)과 재산 외 손해배상책임(제751조),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방송법 등 현행 법체계는 형사 민사 행정적 수단을 통해 부분적으로 혐오 표현에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지체되는 상황에서 혐오표현 규제에 관한 법적 기준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표현의 자유와 균형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한편, 박종운 법무법인에셀 변호사는 ‘장애차별 혐오표현 특성에 따른 판단기준 제시’이라는 발제에서 “혐오의 시대 ‘정신 나갔네’, ‘절름발이’ 등 장애인 비하표현을 ‘잠시 혼동했네’, ‘거동이 불편한 사람’ 등 그들을 존중하는 표현을 쓰는 문화가 자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안은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장과 홍준식 국가인권위원회 성차별시정과장이 ‘국가인권위원회 혐오표현 진정사례 유형별 검토’, 정재하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혐오표현 규제의 원칙인권위 진정사건 중심으로’, 이승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성차별 혐오표현 특성에 따른 판단기준 제시’, 정주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정보문화보호팀장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별 비하정보 심의 현황’을 발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