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R.C 스프로울의 기고글인 ‘하나님의 주권이란 무엇을 뜻하는가?’(What does it mean that God is sovereign?)를 2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R.C. 스프로울은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설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퍼드에 위치한 세인트 앤드류스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첫 번째 설교 및 교육 사역 목사, 리포메이션 성경대학(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 그리고 테이블톡(Tabletalk) 매거진의 편집 주간으로 활동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예정과 자유 의지를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혼동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 의지가 단순히 이방 철학에서 나온 개념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세상은 인간중심적이고 세속적인 자유 의지 개념을 널리 퍼뜨리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도 자유 의지를 믿는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믿는 자유 의지는 인본주의적이거나 이방적인 자유 의지와는 다르다.
오늘날 교회 안에 널리 퍼진 세속적 사상 중 하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인본주의적 교리다. 이 사상은 인간이 타락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중립적이며, 선을 택할 수도, 악을 택할 수도 있는 능력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우리의 선택이 죄에 속박되어 있다는 성경의 계시를 무시한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있지만, 우리의 선택은 죄의 굴레에 묶여 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의 권능만이 우리를 그 속박과 영적 죽음, 그리고 무력함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의 의지를 이해할 때, 세속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서 심각한 결핍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세상의 사고방식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이 세상이 자율적인 자연법칙이나 물리법칙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심어놓았다.
그러나 성경은 우주가 하나님의 초월적인 주권의 능력 안에서 유지되고 통치된다고 말한다. 나는 내 팔을 들어 올리는 작은 동작조차도 하나님의 능력 없이 할 수 없다. 내가 어떤 의지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주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주권적이시지만, 그 주권은 인간의 자유로 제한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주권자인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제한된 자유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지만, 우리의 자유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유에 의해 제한된다. 주권자는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것에 미친다. 창조뿐 아니라 세상의 유지와 다스림, 그리고 우리가 “자연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까지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으로 자연을 통치하시는 일반적인 방식일 뿐이다.
만약 우주 어딘가에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움직이는 단 하나의 입자라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통치 밖에서 움직이는 입자는 단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필자는 한 번은 신학교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신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한 부분에 도달했을 때, 학생들이 비개혁파 친구들을 수업에 데려왔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고백서를 그대로 읽었다.
“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자신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그리고 변함없이 일어날 모든 일을 작정하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1) 그리고 물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이 고백을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영원토록 모든 일을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개혁주의 신학교였기에 약 175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러나 약 75명은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여기 계신 분 중에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는 분 있습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작정하신다고 믿지 않으면서도, 여러분은 자신을 무신론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작정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주권자가 아니고, 주권자가 아니시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후 우리는 신앙고백이 말하는 의미를 더 깊이 살폈다. 하나님의 작정은 이차적인 원인들을 제거하지 않으며, 인간의 의지를 폭력적으로 억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도, 죄를 행하시는 분도 아니다. 수 세기 전, 어거스틴도 이렇게 말했다. “주권적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작정하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허용하시는 뜻과 하나님의 지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허용적 뜻(permissive will) 개념을 꺼내 들며, 우리가 원치 않는 사건들을 하나님과 무관하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일어날 일을 미리 아실 뿐 아니라, 그것을 허락하시는 주권자다.
하나님께서 필자의 죄를 허용하셨다면, 그것은 그분이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지혜롭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선하게 행하시고, 주권을 완전하게 행사하시기 때문이다.
요셉의 고백과 악의 한계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배신하고, 그를 노예로 팔아 감옥에 갇히게 했다. 하지만 훗날 요셉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 (창 50:20)
성경은 악을 선이라 하지 말고, 선을 악이라 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한다(이사야 5:20). 악은 악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악조차도 그분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
재난과 주권
허리케인,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자연의 우연한 사고다.” 그러나 보험 회사조차 이런 것들을 “천재지변(acts of God)”이라 부른다.
9·11 테러 이후,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자 세상 언론은 격분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짓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이사야 45:5–7)
9·11 이후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악의 실재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일어났다. 둘째,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미국 전역에 “God bless America(하나님,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문구가 넘쳐났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국을 심판하실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주적 종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천상의 벨보이”, “하늘의 산타클로스”처럼 여긴다. 필요할 때 불러서 좋은 것만 받으려 하지만, 그분의 절대 주권에는 무릎 꿇지 않는다.
하나님의 네 가지 주권
하나님의 주권은 네 가지 영역에 미친다: ▲자연 ▲역사와 인간의 일들 ▲도덕과 의무 ▲은혜의 주권이다. 그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명령할 권리를 가지셨고, “하지 말라”와 “하라”라고 말씀하실 권리를 가지셨다.
결론: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로마서 11장 36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여기서 보면 “주에게서(from Him)”: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 “주로 말미암아(through Him)”: 그분의 주권적인 능력과 역사로 이루어짐, “주에게로(to Him)”: 모든 것의 목적은 필자나 독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하며 이 글을 마친다.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만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