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신명기 1:17, 레위기 19:15, 약 4:12)
하나님의 법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인간 사회의 재판 역시 그분의 성품을 따라 공정하고 진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를 일관되게 강조한다. 신명기는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보지 말라”고 하였고, 레위기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도 말고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라”고 하며 공정한 재판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다.
성경의 인물들도 재판의 무게와 책임을 깊이 인식했다. 모세는 광야에서 수많은 백성들의 재판을 직접 감당하느라 지쳐, 후에 재판권을 분담했고(출 18장),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 재판의 지혜를 간구하였다(왕상 3장). 그만큼 공정하고 지혜로운 재판은 지도자의 핵심 사명이었다. 실제로 성경에는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다툴 때,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알아보고 진실을 밝혀낸 솔로몬의 명판결(왕상 3:28)이 있는가 하면, 거짓 증인을 세워 예수님을 정죄한 종교지도자들의 불의한 재판(마 26:59)도 기록되어 있다. 이는 정의로운 재판과 불의한 재판이 신앙공동체의 운명을 갈라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판의 상식적 의미는 다툼이나 범죄에 대해 법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공적 절차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삼권분립에 따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독립된 사법부가 적용하여 재판을 수행한다. 교회 역시 신앙 공동체로서 교회법과 재판제도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권징재판(교인의 죄과에 대한 징계), 행정재판(총회 결의에 대한 무효·취소 소송, 선거무효소송 등)이 있으며, 이는 교회의 질서와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구약 율법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재판의 절차와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공정성, 진실에 근거한 판단,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약자 보호와 정의의 균형, 재판 지연 금지와 같은 원칙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재판의 생명은 무엇보다 공정성과 지혜(전문성)에 달려 있다. 만일 재판관이 무지하거나 이해관계에 얽히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거나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한다면, 그 재판은 더 이상 신뢰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재판은 신뢰할 만한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교인과 목회자들이 교회재판의 불공정성을 호소하며 국가법원에 재판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공정성이 생명인 재판에서 교회재판은 종종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낳고 있다. 재판관이 교회법에 정통하지 않거나, 재판이 수차례 번복되어 확정력이 없거나, 총회나 교단 정치에 좌우되는 경우가 그렇다. 교회 내부의 문제는 바울의 권면처럼 세상 법정이 아닌 교회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지만(고전 6:1-8), 한국교회는 그 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국가법원은 교회 분쟁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 50여 년간 국가법원이 판결한 교회분쟁 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 그 대답은 “아니오”였다. 왜냐하면 교회재판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법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데, 세상 법조인들은 신앙공동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반 단체로서의 법리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법은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신앙적 맥락과 영적 의미가 내포된 질서 체계다. 그 결과 국가재판은 오히려 분쟁을 해결하기보다 교회 내 갈등을 더욱 장기화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재판이 교회 안에서든 국가 안에서든 공정하고 신중하며 지혜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은 말한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하나님은 세상 통치자에게는 국가재판을, 교회 지도자에게는 교회재판을 맡기셨다. 재판은 단순히 시비를 가리는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서 구현되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재판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공정과 진실, 그리고 긍휼의 마음으로 판단해야 한다. 억울한 자의 목소리를 듣고, 죄를 범한 자를 바르게 징계하여, 국가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정결하게 세워가는 사명이 재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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