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댄 델젤 목사의 기고글인 ‘선함 때문에 오히려 천국에 가지 못하는가?’(Are you too good to go to Heaven?)를 1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델젤 목사는 네브래스카주 파필리온에 있는 리디머 루터 교회(Redeemer Lutheran Church in Papillion)의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8:9-14). 바리새인은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구원받거나 의롭다 함을 얻거나 거듭나거나 속죄함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절)라고 고백하였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에 내려갔느니라"(14절)고 말씀하셨다.
의롭다 하심(칭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될 때 일어난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다. 성경에 따라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때, 하나님은 마치 내가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나를 보신다. 하나님의 의가 내 영혼과 죄를 덮으시며, 이는 그리스도인을 주를 위해 살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준다.
예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2)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건강한 자"란 자신의 의로움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해줄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리새인과 같이 철저히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죄에서 돌이켜 주님과 동행하려는 자들을 용서하신다. 회개하는 자는 자기 영혼의 병, 곧 죄를 인식하고 위대한 의사이신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로마서 5:6)라고 기록했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의로운 삶을 살아야만 용서와 칭의를 받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죄인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자격이 없다. 결국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적 행위에 의지하는 모든 사람은 실망과 더불어 천국에서 배제될 뿐이다.
사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그는 너무 "의로워서" 칭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기록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거니와 만일 누구든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립보서 3:4-6).
사울의 의는 인간이 만든 의였으나,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입혀진다(요한복음 1:12).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은 변화되어 이렇게 기록한 사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로마서 3:20-22).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기에는 "너무 선한"가? 다시 말해,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충분히 선해져야 칭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행위로 칭의를 얻으려는 사람은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한 자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행위로 칭의를 "보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울이 유대인들에 대해 기록한 것과 같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로마서 10:2-3). 자기 의를 세우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사실을 이해하는가? 왜 어떤 이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기에는 "너무 선한"지 깨닫는가? 그리스도는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고,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을 용서하신다. 그러나 자기 의에 사로잡힌 자들은 여전히 죄와 불신앙 가운데 남아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기독교 신앙을 "선행을 쌓아야 하는 체계"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갈라디아서 3:10). 곧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잠깐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을 하길 원하시잖아요!"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일 당신의 선행이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한 시도로 행해진 것이라면,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 밖에 머무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천국에 대한 확신을 십자가 위에서 죄값을 치르신 예수께 두지 않는다면, 심판 날에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23)라는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종교적 행위가 천국 입성의 자격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의심스럽게 여긴다면,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행위에 의지하는 수많은 종교인들을 보라. 유대인, 무슬림, 그리고 심지어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신의 종교적 업적을 내세우며 의를 세우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 함과 같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9-10).
그러므로 당신에게 묻는다: 자신의 죄와 구주가 필요함을 인정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기에는 "너무 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