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 지나도 고향인 이라크에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잘릴 다우드 박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잘릴 다우드 박사의 기고글인 ‘이라크 출신의 기독교인으로서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I'm an Iraqi Christian and I can't return to my homeland anymore)를 1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다우드 박사는 세계 난민 보호 단체(World Refugee Care)의 창립자이자 달라스 아랍 교회(Arabic Church of Dallas)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만약 필자가 난민으로 떠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필자는 체포되어 사형이나 종신형에 처해질 것이다. 이것이 이라크에서 기독교인이 직면하는 박해이며, 전 세계 이슬람 다수 국가에서 그들의 삶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1982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서 탈출한 후, 필자는 고향에서 새로운 위협을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시아파 주도의 이라크 정부가 작성한 두 건의 문서가 필자를 거짓으로 “시온주의 단체”로 낙인찍고, 필자가 유럽에서 시아파 민병대 활동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수배자로 선언했다.

이러한 조치는 필자 개인뿐만 아니라 중동 난민들을 향한 필자의 사역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필자는 이라크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지만, 이라크가 필자를 송환하려 할 수 있는 인근 국가나, 시아파 민병대가 위협이 되는 유럽 국가로는 여행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나 이라크와 같은 이슬람 다수 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이 겪는 박해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잠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라. 무장 극단주의자들이 당신의 집과 재산을 전부 불태웠을 수 있다. 심지어 가족이 눈앞에서 처형당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똑같이 당할 것이다.”

중동에서 기독교인은 무슬림들에 의해 ‘이교도’로 여겨져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그들은 최고 공직에 오를 수 없으며, 주요 의사결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러나 박해는 국가 법률 이상의 깊은 사회 구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 박해는 가정, 학교, 직장에서 발생하며, 그곳에서 그들은 종교 다수자가 누리는 기회와 기본 권리를 박탈당한다.

필자가 자랄 때, 필자의 가족은 정부 관리가 방문할 경우를 대비해 집에 후세인 대통령의 공식 사진을 걸어두어야 했다. 정부에 반대 발언을 하면 곧바로 체포됐다. 필자의 학교에서 한 학생이 사라졌는데, 1년 뒤 그가 사담에 반대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필자가 다니던 가톨릭 교회에는 정부 비밀 요원들이 찾아와 반(反)사담 정치 활동이 없는지 감시했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얼굴에 질문이 많은 것으로 쉽게 구별됐다.

어느 날, 필자의 아버지가 라마단 기간에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것을 깜빡하셨고, 그 결과 이틀간 감옥에 갇혔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은 셈이었다.

2003년 사담 정권이 무너졌지만, 2014년 ISIS가 이라크의 기독교인과 다른 종교·소수 민족에 대한 대량 학살을 시작했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는 ISIS 패망 전까지 “대량 처형, 집단 강간과 성 노예화, 납치, 이슬람으로의 강제 개종, ISIS 강제 징집, 기타 잔혹 행위”를 규탄했다.

오늘날 박해는 겉으로는 기독교인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이란 혁명수비대, 헤즈볼라, 후티 반군 같은 극단주의 단체에 충성을 맹세하는 이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라얀 알킬다니라는 전쟁 군벌은 이라크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척하면서 진정한 신자를 박해하고, 무슬림 다수는 이를 방관한다. 그는 인권 유린으로 미국의 제재를 받았으며, 법적 허점을 악용해 이라크 기독교인의 주요 거주지인 니네베 평야에서 정치 대표권을 탈취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라크의 기독교인 인구는 2003년 150만 명에서 오늘날 약 15만 명으로 급감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지금, 필자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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