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데이비드 주콜로토 박사. ©dignityhealth.org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이비드 주콜로토 박사의 기고글인 ‘우리가 바닥에 낮아 질수록, 우리는 그리스도께 더 가까워진다’(The closer we are to the floor, the closer we are to Christ)를 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주콜로토 박사는 전직 목사이자 임상 심리학자이며 35년 동안 병원, 중독 치료 센터, 외래 진료소 및 개인 진료소에서 근무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주, 오랜 친구이자 동료 목사 한 분이 집에 들렀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가장 좋아하는 주제로 흘러갔다. 바로 예수님이었고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저 은혜와 성경,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이한 아름다움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두 친구의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대화 도중에 친구가 잠시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쿠키를 가장 낮은 선반에 두신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야?”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나는 그 이후로 계속 곱씹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하지만, 곱씹을수록 영혼을 깊이 채워주는 말이었다.

그 말은 내게 과거 몬터레이에 위치한 정신의학 센터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은 페블비치와 카멜 근처였고, 주차장은 고급 자동차 전시장 같았다. 페라리, 벤틀리, 롤스로이스, 벤츠, BMW 등. 이들은 모두 ‘가장 높은 선반’까지 올라간 사람들이었다. 성공했고, 부유했고, 칭송받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과 더 많이 마주할수록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더 많은 쿠키를 원했다. 여전히 허기졌던 것이다. 높은 선반은 만족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지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높은 선반을 반대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지능과 창의력, 추진력을 주신 분이다. “지혜 있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며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다니엘 2:21)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지혜로 질병을 치료하고, 문명을 세우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탐구해왔다.

그러나 솔로몬은 말한다. 온갖 세상의 부를 모은 후에 말이다,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니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도서 1:14).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도 결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올라갈수록 만족은 더욱 멀어진다. 하지만 은혜는? 은혜는 ‘가장 낮은 선반’에 놓인 선물이다.

수년간 영혼을 소진하며 일하면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가장 풍성하고 깊고 생명을 주는 축복은 누구든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을 불시에 찾아오는 고요하고 신성한 순간 속에 있다. 당신은 맨발로 모래 위에 서 있고, 태양은 태평양 너머로 녹아내린다. 잠깐의 숨막히는 순간, 세상이 멈춘 듯하다. 온전해 보인다. 마치 지구가 숨을 내쉬는 것 같고, 당신은 그 숨결 안에 서 있다. 그리고 하늘이 갈라진다. 먼 천둥소리, 구름 위를 가로지르는 번개. 당신은 작아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안전하다고 느낀다.

한 아이가 웃는다. 크고 거침없는 웃음. 순수한 기쁨. 마치 누군가 악보 없이 작곡한 음악처럼 공기를 가득 채운다. 그때 당신은 기억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후, 당신은 무너진다.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 친구가 침묵 속에서 당신을 안아준다. 그 고요함은 어떤 조언보다도, 어쩌면 어떤 기도보다도 크게 말해준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힘든 현실은 누군가가 당신을 용서한다는 것이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당신조차 용서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자비는 당신 안에서 무언가를 깨뜨린다. 그리고 당신은 믿기 시작한다. 아마도, 정말로, 하나님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선하신 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것들은 단지 순간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의 ‘단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시고,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 만큼 너그러우신 하나님의 흔적들이다.

하나님은 낮은 곳에, 가장 좋은 쿠키를 두신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도다”(시편 145:9). “그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마태복음 5:45) 우리가 그것을 ‘자격’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께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오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7–8).

예수님은 높은 단상에 올라서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먼지 속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늘의 모든 축복을 손닿는 곳에 두셨다. 그분은 그 축복을 교만한 자나 권력자에게가 아니라, 온유하고 지친 자, 상한 자에게 주셨다. 이미 바닥에 누워, 십자가를 가장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이들에게 주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설이다. 우리가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그리스도께 더 가까워진다. 손을 뻗기를 멈추고, 받기 시작할 때 우리는 가장 좋은 쿠키, 곧 용서의 맛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그런 은혜를 맛본다면, 우리는 알게 된다. 가장 좋은 쿠키는, 가장 낮은 선반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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