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하향 조정했다. 국내 정국 불안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불확실성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KDI는 11일 발표한 'KDI 경제전망 수정' 보고서를 통해 올해 경제 성장률을 기존 2.0%에서 1.6%로 낮췄다. 이는 불과 3개월 만에 0.4%포인트(p) 하향 조정된 수치다.
김지연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국내적으로는 정국 불안이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고,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변화로 통상 환경이 악화되면서 성장률 전망을 낮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금리·고환율 기조 속에서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에 대한 추가 관세 정책을 예고하면서 대외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KDI는 내수와 수출 증가폭이 모두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기존 1.8%에서 1.6%로 0.2%p 낮아졌다. 가계 심리 위축과 수출 둔화가 반영된 결과다.
설비투자 증가율 역시 기존 2.1%에서 2.0%로 하향 조정됐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2.7%에 이어 올해도 –1.2% 역성장이 예상된다. 부동산 경기 둔화와 건설업체의 자금 조달 여건 악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제조업도 둔화될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비(非)반도체 분야에서는 경기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부문은 여전히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수출 증가율도 기존 1.9%에서 1.5%로 낮아졌다. 지난해 6.9%의 높은 증가세와 비교하면 상당히 둔화된 수준이다. KDI는 "반도체 수출은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흐름을 보이겠지만, 글로벌 통상 환경 악화로 인해 추가적인 증가세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KDI는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모두 필요하지만, 통화정책의 보다 유연한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금리 수준이 여전히 긴축적이라는 분석이다.
정 실장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경기를 뒷받침해야 하지만, 통화정책이 좀 더 유연하게 운용될 필요가 있다"며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 실장은 "현재 경기 뒷받침이 필요하지만, 추경 요건이 명확하게 충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코로나19 이후 재정 적자가 확대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KDI는 향후 경제 전망과 관련해 정국 불안이 2분기 이후 완화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성장률을 1.6%로 설정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거나 통상 갈등이 심화될 경우, 성장률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정 실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갈등이 격화되거나 정국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성장률이 1.6%를 밑돌 가능성도 있다"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경제 정책의 유연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