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도덕률의 기준 설정에 세속적 인본주의자들만큼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계급투쟁이라는 통일된 접근방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은 정과 반의 투쟁을 통해 합을 이루는 변증법적 변화 중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이 세계관의 가장 근본으로 생각하는 것은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체제 속의 부르주아(정)와 프롤레타리아(반)의 투쟁을 통한 변증법적 결론인 사회주의(합)를 거쳐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변증법적 상향발전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와 함께 진화론을 모든 존재의 기본이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도덕성의 기준도 변증법적 변화의 상태 위에서 진화해 가고 있다고 여긴다. 절대적 도덕률을 무시하고 폭력혁명을 일으킨 공산주의자에게는 도덕성이 없다고 하는 비판에 대해 러시아 공산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우리는 신의 계명에 근거한 기독교의 윤리를 거부한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여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도덕률을 인정하지 않는다. 투쟁을 통해 이 계급이 무너지면 기독교 설화를 근거로 한 도덕률도 바뀔 것이다. 따라서 도덕률의 기준은 역사의 맥락 가운데에서 설정되고 진화할 것이다.”

또한 스탈린을 이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흐루시초프 역시 “사회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삶 속에 절대적인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부르주아나 제국주의자에게 선한 것은 노동자나 식민지 사람에게는 재난이다. 반면 노동자에게 선한 것은 부르주아나 제국주의자에게는 악할 수밖에 없다.”라고 절대적 도덕률을 부정하였다. 이처럼 계급간 도덕률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과 모순되게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모든 것이 선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도 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것이 선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 태도를 취한다. 다수의 공리를 선으로 정한 경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기에, 핍박받는 약자인 노동자에게 선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은 어떤 악독한 방법이 동원된다 해도 선하며 절대적인 도덕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도덕률의 실상은 어떤 모습인가?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는 노동자 개인이 아닌 공산당의 원하는 바가 도덕률이 될 것을 예견하였다. 그리고 실재로 그렇게 되었음을 소련과 동유럽에서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 실험이 잘 보여 주었다. 강제노동수용소를 통한 강제적 교화나 이웃 간의 상호감시 등은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것이 아니고 공산당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공산당만을 위한, 사실은 최고 권력자 한 사람만을 위한 도덕률이 중국과 북한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은 좌파 지식인들이 만든 행동양식이다. 20세기 초에서 중반에 이르는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동안 전체주의 국가에 의해 개인에 가해지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둔다. 이들의 목표는 이전의 모던 시대를 관통하던 메타네러티브(절대 진리, 절대 도덕률)를 모두 무시하는 것이다. 장 프랑스와 리오타르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진리이고 선인지를 알려주는 메타네러티브가 없다. 국가 전체 혹은 여러 세대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메타네러티브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리틀네러티브로 만족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각각의 사회들마다 자기들만의 필요를 충족시킬 "작은 규칙들"을 발달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도덕적 상대주의이다.

포스트모던주의자에게 선은 비주류, 소외받는 사람, 여성, 유색인종, 가난한 자, 성소수자들을 억압으로부터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든지 그들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정당하다(Politically Correct; PC)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를 규합하려 한 것처럼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은 다양한 분야의 소수자들을 규합하여 국가, 직장, 교회, 가정의 기본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그들은 기독교가 지켜온 전통적 가치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네오막시스트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 서구사회의 성적인 영역을 집중 공격해 왔다. 성적 타락은 가정을 파괴하고, 이혼을 촉진하며, 혼외 자녀를 양산한다. 혼전 성관계와 동거 역시 낙태, 비혼 유지를 촉진한다. 이 모든 것은 결혼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여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생육-문화명령에 어긋나는 일이다. 성적 타락은 하나님이 임명한 사회인 가정과 교회를 허물고, 거룩한 성과 가정의 수호라는 보수적 가치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다. 동성애, 동성혼 허용을 요구하는 법이나 차별금지법은 기독교가 지켜내려는 보수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입법인 것이다.

인권을 내세우며, 약자와 소외된 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도덕률의 기본으로 내세우는 공산주의와 포스트모던의 주장은 관대하고 정의로운 것처럼 보인다. 나그네, 고아, 과부, 가난한자 같은 4대 취약계층에 대해 형제로서 책임을 지라는 하나님의 명령과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인권과 약자보호의 목적은 규합된 힘을 이용한 권력과 이익 쟁취임이 분명하다. 또한 하나님은 가난한 자나 세력 있는 자라고 해서 편들거나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재판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선악의 기준을 항상 하나님의 진리의 다림줄에 견주어 재평가해야 한다.

묵상: 약자 혹은 소수자 보호가 최우선이 되는 도덕률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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