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엽 박사(Rev. Joseph Youngyup Cho, Ph.D.)
조영엽 박사(Rev. Joseph Youngyup Cho, Ph.D.)

1.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에서의 민중의 실체(實體)는 무엇인가?

오늘날은 민중·민중신학·민중민주주의·민중문학·민중예술·민중교육·민중언론·민중해방·민중교회·민중통일심지어는 민중만화 등등의 용어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확산 범람하고 있다. 그러면 민중이란 과연 누구를 말하는가?

우리말 사전에 민중이란 다수의 대중 또는 무리·백성·국민·평민· 대중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하였다. 민중이란 단어를 어원적으로 고찰할지라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즉 민(民=min)은 백성(百姓=people)을 중(衆=jung)은 무리(mass)를 가리킨다.

그러나 민중신학에서 주장하는 민중(民衆=people)이란

① 사회적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 때문에 소외된 자들,
② 경제적으로 자본가들과 기업주들의 횡포로 인하여 착취당하는 가난한 피지배집단들,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③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민중신학에서는 사회 구조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가진 자와 못가진자, 강자와 약자, 착취자와 착취의 대상자, 기업주와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 등으로 2분(二分)하여 격리시키므로 계급사회(Class society) 의식을 고조시킨다.

민중신학은 한국에서 억압받는 민중들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신학, 한국적 해방신학이라고 궤변을 토한다.

2. 민중신학의 발생 동기와 그 시기는 언제인가?

민중신학이란 일종의 경험적 정치신학이다. 특히 민중신학은급속한 경제성장에 의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투쟁을 통한 사회 변혁을 이룩하고자 하는 민중의 저항운동과 민권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기독교 내의 급진 자유주의자들은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학을 정치적으로 재조명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란 민중들 편에서, 민중을 위한, 하나의 정치신학이라 하겠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민중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빈부의 격차, 이념적으로는 공산주의를 향한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반(反)사회적 반(反)국가적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민중민주주의란 북한 공산정권의 인민민주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며, 인민민주주의의 기본 사상은 공산주의이다.

3. ‘민중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민중’의 어원적 고찰 : (민중 = o[clo")

민중신학에서는 백성(민중)이란 용어를 강조하며 애용한다. 백성(민중)이란 헬라어 원문에 두 단어가 있다. 라오스(laov")와 오클로스(o[clo")이다. 이 두 단어 중에 ‘오클로스’만을 민중이라고 한다.

4. 민중신학에서 정의하는 ‘민중(people)’

1) ‘나의 백성(my people)’을 민중이라 한다.

나의 백성(my people)대(對) 이 백성(this people)

문희석 교수와 서남동 교수는 사람들을 나의 백성, 이 백성으로 이분(二分) 하였다. 그리고 민중을 가리켜서 나의 백성들(my people)이라 하고 반면에 가진 자, 강자, 지배자, 착취자, 기업주들을 가리켜 이 백성들(this people)이라고 하였다.

이 백성들(this people)은 민중의 원수들(The enemy of Min-Jung), 지배계급(The Ruling class)이라고 한다.

나의 백성(my people)은 이 백성들에 반대되는 자들, 곧 재산과 인권을 유린당한 가난한 자들(The poor), 억압당하는 자들(The oppressed), 무능한 자들(The powerless)을 가리켜 나의 백성(my people=민중)이라고 하였다.

2) 지배자와 싸우는 백성을 민중이라 한다.

문희석 교수는 <출애굽기서의 내 백성은 일반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들 곧 지배자들과 싸우는 민중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리고 참 선견자, 정의의 편에 서서 지배계급과 충돌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상기와 같이 동족을 나의 백성들과 이 백성들로 격리시킨 후에 나의 백성은 이 백성과는 원수(enemy)라고 하였다.

3)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민중이라 한다.

안병무 교수는 그의 논문 “마가복음에서 예수와 오클로스”에서 민중을 오클로스(o[clo")라고 불렀다. 오클로스(o[clo")는 “예수를 둘러싼 무리들” 곧 예수를 따르는 수많은 다양한 무리들이라고 하였다.

오클로스(o[clo")는

① 사회에서 정죄 받은 소위 죄인들(sinners)
② 사회에서 소외당한 계층(Ibid)
③ 지도층과 대조되는 반지도층 입장에 선 계층(Ibid). 피지배자들
④ 집권자들의 공포의 대상들(Ibid).
⑤ 지배층에게 소외된 계층(Ibid, p.90).
⑥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들(Ibid).
⑦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졌거나 경제적으로 정착한 계층이 아닌 자들(가난한 떠돌이들)(Ibid, p.91).
⑧ 체제에서 정죄 받고 소외된 계층(Ibid).
⑨ 병자들, 과부들, 배고픈 자들(Ibid, p.92-93).
⑩ 죄인들 : 범죄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하거나, 병들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 없어서 죄인으로 규정된 자들(Ibid).
⑪ 세리들(tax collectors). 로마제국의 앞장이 부정축재자들이 아니라, 마지못하여 일정한 업무만 수행하는 자들,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반로마제국 운동하는 게릴라 운동 전개자들(Ibid, p.94).
⑫ 민중이란 “갈릴리의 민중의 현장이란 … 정치·문화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면에서 억압, 소외, 착취된 자들(Ibid, p.171)”이라고 하였다.

4) 피지배자를 민중이라 한다.

김용복 교수는 민중의 개념을 “여성이 남성에게 정치적으론 지배를 받고 있다면 여성은 민중의 영역에 속한다. 한 민족이 타 민족에게 지배를 받는다고 할 때도 지배받는 민족은 민중의 집단이다. 한 인종이 어떤 강한 인종에게 지배를 받을 경우 역시 지배받는 인종은 민중이며 지성인들이 물리적 수단으로 권력을 잡은 자들에 의하여 억압을 받는다면 이들도 역시 민중이 된다.(p. 289).

여성이나 남성이나 지성인들, 민족, 인종 등 어떤 민족이나 인종, 남자나 여자, 지식인이나 무식한 자를 막론하고 지배하와 억압을 받는 피지배자들은 모두 민중이라고 정의하였다.

5. 민중은 해방의 대상자(The Object of Liberation)라고 주장한다.

민중신학은 민중을 구약성경 출애굽기서의 사건(출3:1-15)과 결부시켜 해석한다. 즉 민중은 애굽의 독제체제하에서 억압당하는 이스라엘 자손들 또는 야곱의 자손들을 가리킨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히브리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정치적으로 노예가 되고, 종교적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국적도 없고, 법적 보호도 없는 법울타리 밖에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애굽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받아야할 해방의 대상자들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민중은 인권을 유린당한 억압받는 자들(Min-Jung are the oppressed)이므로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 민중은 해방의 대상자라고 한다.

누구로부터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해방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민중의 힘을 혁명의 에너지(energy)로 승화시키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폭력도 정당화하는 점에서 해방신학과 일치한다.

민중신학에서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체제와 지배계급들로부터,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기업주들과 자본가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 : 상기와 같이 민중신학을 고찰할 때,

1. 민중신학은 순수한 한국의 독창적 신학이 아니다.

민중신학은 한국에서 일어난 독창적이고 순수한 한국적 신학(Korean Theology)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중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학적 배경이나 민중신학의 소재들, 그리고 그 이론 등을 고찰 할 때 민중신학이 결코 한국사람들의 독창적이고 순수한 한국적 신학, 미래를 위한 희망의 신학이 아니다.

민중신학은 특히 아프리카의 흑인 신학(Black Theology) 남미(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흑인 신학이나 해방신학은 곧 공산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일종의 정치신학, 혁명신학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중신학이란 한국판 해방신학이다.

민중신학은 서구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의 자유주의 사람들의, 서구 자유주의 신학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킨 것에 불과하다. 민중신학은 결코 순수한 한국의 독창적 신학이 아니다.

2. 민중신학은 소수 자유 급진주의자들의 신학이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와 사회 각계각층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민중신학의 주장자들이나 추종자들은 매우 소수이며 심지어는 그들의 영내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중신학을 문자적으로 풀이한다면 민중이 주도하는, 민중을 위한 신학인 것처럼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이란 그 명칭이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지지하는 신학이 아니라, 소수 급진 자유주의자들의 신학이며, 그 신학사상을 불순 좌경세력이 자기들의 핵심 이론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교회와 사회 각계각층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3. 민중신학은 온갖 잡탕들로 구성된 혼합신학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이 아니다.

기독교를 불교, 유교, 샤머니즘(Shamanism), 등과도 결부시켜 대화(Dialogue)를 통한 접근 점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당놀이, 탈춤놀이, 홍길동전, 동학란, 3.1운동, 4.19 해방신학 등등을 민중신학의 소재들로 사용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민중이란 용어인 라오스(laov")와 오클로스(o[clo")중에 오클로스만을 민중이라고 부른다. 라오스와 오클로스는 어원상 동일하며 용법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들이 오클로스만을 민중에 적용시킨 것은 잘못이다. 더욱이 오클로스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 중에 일부만을 제한하여 규정하여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는 자,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자, 사회적 소외된 자’들만을 민중으로 규정하는 것은 더 큰 모순이며 잘못이다.

4. 민중신학은 종래의 전통적 형이상학적 관념의 신학이 아니라, 현실적 행동적 참여의 정치신학이다.

그들은 신앙세계의 초월적인 면과 개인의 영혼 구원문제를 배제하고 개체를 집단으로 대치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사회참여를 잘못된 개념으로 주장한다.

오늘날 민중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국에 대하여 반정부적 활동을 일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구성원이란 성경에 없는 무근한 소리일 뿐 아니라, 원리에도 어긋난다.

교회의 참된 사회참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신자들이 자기 맡은 바 처지와 형편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희생적으로 최대한 감당하는 것이다.

5. 민중신학은 사람들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이분(二分)하며, 피지배계급만을 지지 옹호한다.

우리는 물질소유, 유무, 직분상의 상하, 남녀의 성별(性別) 기타 어떠한 이유로도 사람을 이분(二分)화 하여 그중 일부만을 편견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 그들의 이론과 주장으로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창1:26) 모두가 기본권에 있어서 동일 동등하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주인이나, 남자나, 여자 구별 없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8)고 교훈하신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선진 산업사회로 도약하는 오늘날과 같은 현실 속에서 억압당하는 자 착취당하는 자가 어디 있는가?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의지(Free will)에 의하여 무엇이든지 결정하지 않는가? 아니면 타의의 강요에 의하여 피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말인가?

분명히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억압이나 착취하는 사회는 결코 아니다. 물론 사회적인 모순이 전연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점진적 과정에 의한 진보와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 않는가?

6. 민중신학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결사반대한다.

민중신학은 기업주, 자본가, 정치적 권력층들을 모두 지배자, 억압자, 착취자들로 정죄하고 그 원인은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제도를 채용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들에 의하면 시장경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계급장벽을 쌓고 경제적 식민주의를 조성하며 부정부패를 산출하며 물질만능주의로 사람을 유도한다. 그러므로 시장경제야 말로 가난과 부정, 억압과 착취의 원흉이라고 정죄하며 반대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야 말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빵문제를 해결하며 풍요로운 생활, 그리고 인간의 기본 권리인 가장 고귀한 자유를 보장한다. 경제적 시장경제, 정치적 자유민주주의 이념적 반공은 삼위일체와 같다.

7. 민중신학은 하나님 나라를 민중(오클로스)을 위한 현세적, 현실적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이해한다.

민중신학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지상낙원을 말하며 이는 해방신학에서의 ‘하나님의 왕국’ 개념과 마르크스공산주의의 ‘유토피아 사상’과 흡사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줄기찬 희망의 상징이며 눌린 자들 – 착취당하는 자들의 저항과 탄식의 표상이며, 사회적 집단적 인간의 구원을 보장해 주는 영원히 성취될 수 없는 꿈(망상)이다. 그들은 계시록 20:2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왕국’을 한갓 소설로 간주한다. 또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죄인들을 중생시키는 심령의 천국,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건설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적 천년왕국’ 그리고 그 후 ‘영원한 천국’을 믿지 않는다.

8. 민중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도래가 그 목적이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한다.

해방신학이나 흑인신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적용시켜 폭력을 포함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채용한다. 이와 유사하게 민중신학에서는 ‘한(恨)의 에너지’를 ‘혁명적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뿐 방법에 있어서 구체적 대안이 없다. 다만 그들의 신학내면에서 해방신학의 방법론 같은 것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9. 민중이란 용어는 북한의 ‘인민’과 같은 의미로서 좌경세력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이다.

민중이란 인민대중(人民大衆)이란 말의 약자로서 둘째 글자 ‘민(民)’과 네 번째 글자 ‘중(衆)’을 따서 ‘민중’이라 하였다. 민중이란 용어는 북한 사회에서 사용하는 인민(人民)이라는 용어와 일맥상통한다. 좌경세력이 민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민중이란 용어가 부담 없이 사용하여 일반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용어를 혼란케 하므로 허위, 기만술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민중신학이란 성령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 다수의 국민들도 반대하므로 민중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에 빠져있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종속이론, 해방신학, 마르크스 공산주의와 접촉하면서부터 국내 좌경 세력의 핵심용어와 핵심이론이 되었다.

민중신학은 사회저변에서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자들과 불온 좌경 써클에 침투하여 소위 의식화 교육을 통해 이들이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과격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이 과거에는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현재는 남북통일 문제를 내걸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무질서, 파괴, 혼란을 야기하는 중심 배후세력이다.

민중신학의 기본 강령인 민중민주주의는 북한 공산정권의 인민민주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며, 인민민주주의의 본질은 공산주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의 순수 정통성을 보전하고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원수이며, 우리 조국과 민족의 원수인 민중민주주의를 과감히 축출하여야 한다.

조영엽 박사(Rev. Joseph Youngyup Cho, Ph.D.)

◆ 사단법인 성경보수개혁교회단체연합회대표회장(이사장 정원식 전국무총리)
◆ 장로회총회신학연구원(성경보수) 교의신학(조직신학)교수
◆ (전)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신학특별위원
◆ (전)국군정신전력학교 외래교수
◆(전)국제기독교연합회(I.C.C.C - 총재 칼 맥킨타이어, Carl McIntire) 및 미국독립장로회해외선교부(I.P.M. - Dr. Machen 설립)선교사 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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