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갑 시스코프 대표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33:11)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으면 모세는 죽어야 할 것이다. 출애굽기 33장 20절을 보자.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 이니라"(출 33:20)

여호와의 얼굴을 보는 자는 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였으니 죽어 마땅할 것이다.

위의 말씀을 '우리말 성경'(두란노)을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과 같이'란 말씀이 없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모세는 진영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보좌하는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출 33:11, 우리말 성경)

마치 모세가 여호와와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해 하기 쉽다.

정말 모세가 여호와와 대면해서 말했을까?

모세가 여호와와 대면하여 말씀하였다는 것은 모세가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듯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했다는 친밀감의 정도를 강조한 표현이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광채만 모세의 얼굴에 강하게 비췄을 뿐이다. 그리고 모세의 얼굴은 하나님의 광채로 인하여 빛났다(출 34:29-35).

우리는 장차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고 말한다.

거울로 보는데 왜 희미하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 당시의 거울은 청동 거울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유리 거울처럼 반사가 잘되는 거울이 아니었다. 겨우 얼굴 형태를 알아 보거나 좀 더 고급 제품이었다 하드라도 거울 면 자체가 울퉁불퉁하였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보는 거울처럼 깨끗하게 볼 수는 없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지막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계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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