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족과 함께한 고 권지상 선교사(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컴미션

4년 전 까만 피부에 해맑은 미소를 가진 보조족(Bozo)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아프리카 말리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젊은 선교사의 마음은 뜨거웠다. 가장 열악한 아프리카의 미전도종족을 섬기는 일은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선교에 눈 뜬 고(故) 권지상 선교사(35)가 오랫동안 품은 꿈이 실현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오지든 열악한 환경은 선교사들에겐 또 하나의 큰 도전이다. 여름이면 40도가 훌쩍 넘는 뜨거운 말리의 기후는 현지인에게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하물며 도시 생활만 하던 젊은 선교사 부부에겐 말할 나위도 없었다.

"말리는 지금 시즌이 섭씨 40~45도가 지속되고 있는 제일 더운 때입니다. 일의 진행이 평소에 반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참 연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섭씨 20~25도, 그리고 40~60%의 습도에서만 안정감과 쾌적감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저와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한계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지난 4월 29일 권지상 선교사의 편지 중에서)

현지 교회와 무슬림 미전도종족위한 헌신의 삶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다. 그러나 많은 선교사가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권지상 선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총인구 약 31만 명의 보조족은 99% 이상이 무슬림인 불어권 미전도종족이다. 현재 알려진 말리의 보조족 크리스천은 단 2명뿐이다. 보조족 인구의 열 배는 되는 투아레그족 역시 무슬림 미전도종족이다. 말리는 2년 전 내전으로 치안이 불안하다. 투아레그 반군의 무장 공격으로 일부 지역은 아직도 여행 금지 구역으로 제한하고 있다. 권 선교사는 프랑스에서 8개월간 불어 연수를 마친 뒤,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서 언어 공부를 하며 말리 현지 교회와 미전도종족 복음화를 위해 현지 크리스천들과 함께 기도모임을 하고 말씀을 전했다. 또 목회자 양성을 계획하고 젊은 현지인 청년들의 성경공부도 인도했다.

5년 전 컴미션 선교사로 허입되면서 그가 작성한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자녀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과 그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살다 보면 단순하지만 풍성하고 넓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선교지에 가기 전 제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마인드맵을 하면서 두 가지 단어가 최종적으로 남았습니다. 그것은 '선교하는 것'이고 또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마지막 말은 '당신과 함께 선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서 행복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축복하며, 소풍과 같은 삶을 잘 마무리 하며 천국에서 뵙길 기대합니다."(2009년 2월 23일 작성한 유서 중에서)

"그는 떠나도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어"

고 권지상 선교사   ©한국컴미션

불의의 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됐을 때를 대비해 미리 작성한 유서는 정말로 그가 이 땅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됐다. 지난 5월 초 보조족 성경번역을 하는 외국인 선교사의 초대로 사하라 중부에서 보조족과 투아레그족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보조족 사역과 마을들을 리서치하고, 5월 12일 바마코로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순교의 피를 뿌린 것이다. 오는 11월 한 텀(term)을 마치고 안식년과 제2기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여행이 이 땅에서 그의 마지막 발걸음이었다.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10년 넘게 사역한 컴미션 한국대표 박래수 선교사는 "아프리카의 도로에는 포트홀(도로 웅덩이)이 많아 교통사고가 잦다"며 "권 선교사 부부가 탄 자동차도 젠네 지역 근처를 지날 때 포트홀에 빠진 타이어 두 개가 연달아 찢어지면서 전복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사고 직후 뇌출혈 증상이 보였고, 의식이 없던 권 선교사는 2시간 만에 세바레 국립병원에 도착했지만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고 병원 도착 1시간여 만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5월 19일 권 선교사의 시신을 들여온 이튿날, 권지상 선교사의 아버지 권진희 목사가 목회하는 횃불교회에서는 천국환송예배가 열렸다. 횃불교회 성도, 컴미션 이사 및 선교사, 간사, 파송교회인 의정부제일교회 성도 등 3백여 명이 함께했다. 권진희 목사와 총신대학교 동기이자 오랜 친구 사이인 컴미션 국제대표 이재환 선교사는 17일 입관예배 때 "권 선교사는 많은 사람이 가기를 두려워하는 말리의 가장 소외된 종족인 보조족과 투아레그족 선교를 마음에 품고, 복음을 들고 간 '지행일치' 한 선교사"라며 "권 선교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복음전파가 계속되는 한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며 추모사를 전했다.

현지 기도모임 친구들, 순교비 세울 계획 전해

그의 인생의 가치처럼 미전도종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하던 권 선교사는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초년생 선교사였다. 함께 동역한 현지 기도모임 친구들이 사고 현장에 순교비를 세울 계획을 전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람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는 법. 앞날이 창창한 젊은 선교사의 죽음이 안타까워도, 이제 막 선교에 발을 들여놓은 초년생 선교사의 죽음은 그대로 잊힐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이 제일 먼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순교비를 세울 계획을 전한 것이다.

2000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선교사를 잃은 컴미션도 이사회를 열고 권지상 선교사의 영예로운 죽음을 애도하며 순교자로 부르기로 했다. 파송교회인 의정부제일교회도 순교자기념비를 세웠다.

컴미션 국제대표 이재환 선교사는 지난달 17일 입관예배 때 "권 선교사는 말리의 가장 소외된 종족인 보조족과 투아레그족 선교를 마음에 품고, 복음을 들고 간 '지행일치' 한 선교사"라며 "권 선교사는 복음전파가 계속되는 한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며 추모사를 전했다. 뒤에 의정부제일교회가 세운 순교자 기념비가 보인다.   ©한국컴미션

권지상 선교사는 마지막으로 '목사 아버지와 선교사 아들이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라는 책을 남겼다. 지난 2월 권진희 목사가 아들의 사역지를 방문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성경강의를 한 것을 비롯하여, 권 선교사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말씀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로 표현하여 250쪽 분량의 원고에 담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최종 원고 수정 작업을 마친 며칠 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재환 선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함으로 연구하고, 기도를 호흡함으로 선교를 삶으로 드러낸 한 젊은 선교사가 우리에게 남긴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지역 미전도종족 위한 새로운 동원운동 기대

한양대 '기독교와 현대사회' 교양수업에서 권 선교사를 가르쳤던 양창삼 명예교수는 "수업 시간에 본 그의 천진한 모습과 웃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가 먼저 가다니..."라며 마음 아파했다. 양 교수는 "인간적으로 아쉽고 섭섭하지만, 배형규 목사, 권지상 목사 등 제자들이 주의 일에 힘쓰다 부르심을 받았으니 주님께 감사할 뿐이고, 주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라며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래수 선교사도 "권지상 선교사의 순교를 통해 복음화되지 못한 아프리카뿐 아니라 지구 상 열악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며 한국교회에 미전도종족을 위한 새로운 동원운동이 일어나길 기대했다.

권 선교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 이들을 위해 미리 써놓은 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선교지에서 만약 순교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저를 아끼는 많은 분이 저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적으로는 잠시 같이 못해 슬프지만, 천국에 있을 저를 생각하면서 같이 기쁨으로 장례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각막과 장기 기증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선교지에서 가능하다면 선교지 사람들을 위해 시신이 쓰여졌으면 좋겠고, 가능하지 않다면 화장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유서 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모든 걸 내어놓을 자세로 선교에 헌신했던 권 선교사는 자신의 말처럼, 우리보다 조금 일찍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우리 모두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권지상 선교사는=1979년 7월생으로 한양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GMS, SIM 선교단체서 간사로 일하고 공항 벧엘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 의정부 제일교회에서 청년부를 지도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09년 2월 컴미션 선교사로 허입되고, 2010년 5월 의정부 제일교회에서 선교사로 인준 받은 그는 그 해 11월 정민경 선교사와 결혼했다. 결혼 후 한 달 만인 12월 서부 아프리카 말리 선교사로 파송 받아 프랑스에서 불어 연수를 마치고, 2011년부터 바마코에서 언어공부를 하며 선교 제2기를 준비하던 도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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