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 병원은 가난과 질병 매개로 한 세 번째 교회”

남성현 교수, 한국교회사학회 정기학술대회서 주제발표
남성현 교수(한영신대) ©한국교회사학회 ZOOM 캡쳐

한국교회사학회(회장 박창훈) 제146차 정기학술대회가 12일 비대면 온라인 화상회의(ZOOM)로 진행됐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남성현 교수(한영신대)는 ‘병원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기독교 영성의 역할, 4세기에서 19세기까지 기독교 사회복지의 역사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남 교수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병원은 주로 고대 신을 섬기거나 부상병을 돌보기 위한 특수 목적을 추구했다. 그리스 문화권의 병원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을 섬기는 신전에서 주로 신탁을 받고 ‘몽중신유’ 형식으로 치료가 이뤄졌다”며 “로마제국의 병원은 주로 부상병을 치료하기 위한 군진 전문 병원이었다. 대표적으로 AD 70년경부터 빈도닛사(Vindonissa)에 주둔한 로마 제11군단(Legio XI)의 군병원이다. 이 군병원은 60개의 병실과 약 180-30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와 달리, 4세기부터 태동된 기독교적 병원은 빈민, 호스피스 등 가난한 약자와 불특정 다수를 돕는 병원이었다. 마태복음 25:35절에 따라 가난한 사람을 돌보기 위한 자선 기관의 성격을 표방했다. 기독교 병원이 함의하는 종교적 상상력이란 그리스·로마 문화와 다른 것”이라며 “당시 수도사들은 헬레니즘의 기부정신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히브리 사상을 결합시키면서, 기독교적 병원은 본격적으로 탄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학자 폴 벤에 따르면,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는 부자들의 기부가 사회·문화적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도시의 번영과 중산층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 특히 로마 공화정은 원로원을 중심으로, 선거의 승리라는 정치적 목적이나 가문의 영광을 위해 기부 했었다”며 “반면 히브리 문화권은 선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해 소리쳤지만, 정작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제도는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남 교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던 ‘히브리와 헬레니즘’ 문화는, 4세기 수도자들에 의해 섞이게 됐다. 즉 예수는 구약종교와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영향 아래에서 가난한 자·병든 자·나그네 된 자·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이 그리스도를 돌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마25:35 이하)”며 “이 예수의 명령은 1-3세기 초기 기독교인들이 활발한 자선 활동을 펼치는 근거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문명이 탄생한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가문이 정치와 법의 수준에서 기독교화를 급속도로 밀고 나갔다면, 수도사들은 내면과 정신의 차원에서 기독교적 마인드(Mind)를 로마 인민에게 심겨줬다”며 “역사학자 티모시 밀러에 따르면, 355년경 세바스테의 에우스타티오스가 최초의 기독교적 병원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곳은 나그네와 나환자뿐만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대규모병원 이었다”고 했다.

또 “그의 제자인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오도 372년 이후, 주교좌 도시의 외곽에 교회·감독관·게스트 룸·병원·수공업장 등이 포함된 거대한 복합(Complex) 병원을 설립했다. 바실리오 같은 인물들은 막대한 상속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스스로 가난해진 것”이라며 “(이처럼) 4-5세기 사료들은 하나같이 기독교적 병원의 창시자들이 수도자들이라고 증언한다. 이들은 마태복음 25장 35절 이하의 말씀을 바탕으로, 여행객을 위한 호스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빈원의 역할을 통합적으로 수행했었다”고 했다.

남성현 교수(한영신대)가 발제하고 있다. ©한국교회사학회 ZOOM 캡쳐

남성현 교수는 수도사들의 병원 설립이 ‘성육신의 역설 교리’에 기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기부문화와 히브리 사상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돌봄은 평행선을 달리다가, 4세기 지중해 문화에서 수도자들이 가난한 선행이라는 실천을 통해 두 사상이 화학적으로 결합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료 병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헬레니즘 세계의 선행가들은 모두 부유한 계층이었고 계속 부유한 계층으로 남아 있었으나, 기독교 시대의 영웅들은 자신들이 ‘가난’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병원 설립을 주도했던 ‘선행가’(euergetes)라는 점에서 ‘가난한 선행가’라고 불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티모시 밀러는 가난한 선행가의 정신사적 의미에 주목하지 못했다. 피터 브라운도 기독교 신앙이 문명으로 전환된 4세기에, 가난한 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사회문화 담론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고 밝혔지만, 제도사로서의 병원을 심도 있게 조명하지 못했다”며 “왜냐면 기독교의 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은 성육신의 역설 곧 ‘거지가 된 만유의 왕’이란 개념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치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8:9)라고 설명한 것과 같다. 수도사들은 ‘거지가 된 만유의 왕’인 예수를 모방해, 자발적 가난에 참여한 자들이었다“며 “그런 점에서 이들은 성육신의 교리를 몸소 실천한 자들”이라고 했다.

남 교수는 또 “당시 로마의 법은 기독교적 병원이 확대돼 가는 과정에 큰 기여를 했다.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교회에 상속권을 허락했다. 이는 수도원과 병원에도 확대 적용돼, 신자들이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기증하고 뜨거운 신앙을 증언하기도 했다”며 “또한, 로마 당국은 황제 레오(457-474)의 ‘양도·판매 불가의 원칙(prohibitio alienandi)’를 강화해 나가면서, 기독교 기관 소유의 부동산을 양도하거나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병원 운영을 위한 경제적 토대를 보호했다. 이렇게 ‘성육신의 역설’이라는 영성의 약진과 함께, 국가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기독교적 병원은 더욱 확산되고 분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끝으로 “4-5세기 기독교적 병원이 일궈낸 혁신은 지중해 세계에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대규모 물적·인적 조직을 갖춘 시설이 사상 처음으로 발명됐다는 것”이라며 “당시 교회는 일반 신자들을 위한 구원의 방주이고 수도원이 소유욕·성욕·지배욕 등의 원초적 본능에 화살을 겨눈 특수한 교회라면, 병원은 가난과 질병을 매개로 한 세 번째 교회로서 발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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