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장신대의 신학춘추는 '동성애' 부추기고 '무당'을 예수의 자리에 두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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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재학생이 장신대를 향해 심각한 우려 표명…"신학춘추의 신학관이 우려스럽다"

[기독일보=오피니언] 2017년 5월 30일(화)에 발행된 장로회신학대학교 공식 신문인 신학춘추 114호에는 제4면, 7면, 8면에 걸쳐서 동성애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무당을 두고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라고 칭하였다.

기사 내용들 중 어떤 부분에서도 동성애와 무당의 인터뷰를 성경의 가치관으로 여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동성애 진영과 무속인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한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지난 5월 30일 발행한 학교신문 '신학춘주' 114호에는 동성애와 무속인을 옹호하는 기사가 여과없이 게재됐다. ©신학춘추 페이스북

아래는 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다.

먼저, 제4면의 「무지개가 있는 풍경: ‘투박하게 시작하는 한국퀴어신학운동’ 토크 마당 향린교회에서 열려」는 동성애를 왜곡선전하는 퀴어신학을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홍보한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학교신문 '신학춘주' 5월 30일자 114호 제4면의 「무지개가 있는 풍경: ‘투박하게 시작하는 한국퀴어신학운동’ 토크 마당 향린교회에서 열려」는 동성애를 왜곡선전하는 퀴어신학을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홍보한다. ©이승찬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었던 지난 17일, ···<중약>··· 퀴어성서주석(Queer Bible Commentary, QBC) 번역본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투박하게 시작하는 한국퀴어신학운동’ 토크 마당을 열었다.”

기사 내용 어디를 보아도 퀴어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마치 퀴어성서주석(QBC)을 팔려고 홍보하는 판촉가의 광고 기사를 보는 듯하다.

제8면의 「엣지있는 날; 어느 멋진 날, 보통의 신혼부부를 만나다」에서는 퀴어신학을 중심으로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옹호, 지지하는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를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앞서 4면의 기사처럼 임보라 목사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보여준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학교신문 '신학춘주' 5월 30일자 114호, 제8면에 게재된 「엣지있는 날; 어느 멋진 날, 보통의 신혼부부를 만나다」 기사. ©이승찬

아래는 인터뷰 중 일부이다.

「임보라 목사, “교계가 차별금지법 폐지에 목소리 높일 때, 다른 시선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학교신문 '신학춘주' 5월 30일자 114호 제8면의 「엣지있는 날; 어느 멋진 날, 보통의 신혼부부를 만나다」에서는 퀴어신학을 중심으로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옹호·지지하는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승찬

필자는 신학춘추에게 묻고 싶다. 교계가 목소리를 높였다는데 필자가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며 판단컨대 차별금지법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소수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춘추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고 무엇이 문제이며 해당 법안이 통과된 영국, 캐나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 한번이라도 취재하여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는가? 차별금지법을 우려하는 법조인을 비롯 해당 전문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는가? 신학춘추는 차별금지법의 폐해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목소리는 조금도 담지 않고 오로지 동성애 옹호 세력의 입장의 의견만을 개진할 뿐이다.

군대내 동성 간 항문성교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 6항의 존치 논란에 대해서도 동성애 세력들의 입장만을 드러내어 군형법92조6항이 마치 악법인 듯 묘사한다.

관련 사실들을 모르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참고로, 군형법 제92조 6항’은 『(군인 또는 군인에 준하는 사람에게)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신대에서 발행하는 학교신문 '신학춘주'에서는 지난달 24일 현역 장교가 동성군인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 받은 내용을 친동성애적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승찬

아래는 신학춘추의 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더불어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A 대위에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 문제의 발달은 한국기독교군인연합회(KMCF)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대대적인 동성애자 군인의 색출 지시로 시작됐다는 후문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패널들은 과연 이와 같은 행위가 기독교적 수단인가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곱씹었다. 실제로 지난 24일, 결국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군형법 92조 6항에 의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에 A 대위는 유죄 선고의 충격으로 법정으로 쓰러져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다.“

여기서 군형법 92.6에 대하여 개정안을 발의하려는 정의당 김종대의 페북에 올라온 댓글을 소개한다. 출처(로가기)

"군형법은 군인에게 적용되는 법입니다. A대위가 군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군인으로서 지켜야 될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구속 기소된 거죠.. 본질을 흐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A대위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구속 기소된 겁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군인으로서 지켜야 될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김**의 댓글)

현재 군대 내의 군인 간 성폭행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저는 헌병 장교로 17년 근무했습니다. 병장이 야간 경계근무 중 하급자에게 구강성교 강요하는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의 아들들이 휴가 나와서 선임과 술 마시고 모텔에서 성폭행 당하는 일이 발생해도 찬성하실지요." (서**의 댓글)

"2005년 10월 군에 입대한 A씨(29)는 동성 선임병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자해와 자살시도, 수면제 과다복용 등을 했고 이로 인해 국군병원에서 적응장애와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 입원 치료를 받던 중에도 수차례 자해를 하거나 자살시도를 했고 결국 입대한 지 1년7개월 만에 현역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전역했다." (국민일보, 2015-03-03)

신학춘추의 동성애 옹호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작년 2016년 9월 신학춘추 109호는 총신대학교의 비공식 동성애자 모임인 ‘깡총깡총’을 집중 조명한다. 이번에도 역시 동성애 옹호 입장에서 기사를 썼다. 기사의 마지막 문단 중 일부를 인용한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한국 교회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무언의 시위를 하였다. 곧 본교에 존재하는 성 소수자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성 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이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광나루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신학춘추는 동성애자 옹호세력들이 ‘movement’를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성 소수자’, ‘혐오’라는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다. 성다수자에게 성소수자인 자신들은 억압을 받는다는 이미지를 넌지시 던진다. 혐오라는 프레임을 기초로 선량한 자신들이 억울한 피해를 받는 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사 어느 곳에서도 성경의 가치로 위험천만한 언어의 유희를 여과하지 않았다.

여기서 신학춘추에게 묻고 싶다. 109호와 114호에서 사용한 ‘성소수자’의 범위는 어떻게 되는가? 성소수자의 범위에 근친상간자는 들어갈 수 있는가? 유아성애자와 소아성애자 역시 성소수자인가? 동물성애자도 들어가는가? 성소수자의 범위에 이들이 들어갈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소아성애자와는 달리 동성애자가 특별히 유전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인가? 이제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과거의 과학적 주장은 파기되었다. 해머 박사의 Xq28 동성애 유전자 논란은 해머 박사 자신이 폐기하였다. 2010년, Langstrom은 일란성 쌍둥이 연구를 통하여 동성애가 유전자나 호르몬 때문에 선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2012년, Drabant는 전체 게놈 연구를 통하여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이 아님을 밝혔다.

신학춘추에게 묻고 싶다. 성소수자 ‘혐오’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동성애를 사실 적시로 비판하는 것과 혐오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학춘추가 생각하는 성소수자 혐오의 예시는 무엇인가? 국외의 사례에 비추어 국내에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구체적인 사례는 무엇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행위는 객관적으로 혐오스럽다는 판결이 있다. 대법원은 2008.5.29., 선고 2008도2222에서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동성 간 성행위는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로써,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

필자는 신촌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를 보았다.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눈 뜨고 쳐다보기 민망한 복장을 입고 남녀의 생식기를 본 따서 만든 쿠키를 팔면서, 항문이 그대로 드러나는 항문팬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이것을 두 눈으로 본 나의 ‘혐오’의 감정을 대체 어쩌란 말인가?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적지향을 주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필자가 어찌할 수 없이 느끼는 이 혐오의 느낌을 두고 차별을 운운한다. 인간으로서의 나의 자연스런 감정을 포기하라는 것인가?

신학춘추에게 묻고 싶다. 동성애와 AIDS를 비롯한 성병이 남자 동성애자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국내외 여러 통계자료가 있다. 미국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 에이즈 감염자의 94%이상이 동성애 때문이라고 한다.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들이 언론의 조명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적이 있는가? 항문사마귀, 일명 곤지름이라는 끔찍한 성병에 걸려 불안에 떠는 그들의 애처로움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아래는 동성애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이반시티’의 게시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글이다.

“안녕하세요. 제가 곤지름에 걸려서 사당동 XXX 병원에서 수술을 하려고 오늘 병원에 갔는데 ... 의사 선생님이 에이즈 양성 반응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아이디 mi******)
 “이런 애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에이즈 그렇게 드문 병도 아니에요. 이젠...”(아이디 직***)

국내 트렌스젠더 1호이며 동성애자였던 김유복 씨의 말을 인용한다.

“다 죽었어요. 저보다 나이가 어린 데도요. 담배와 술, 무리한 항문섹스를 한 탓이죠. 저는 다행히 예수를 믿고 나선 안 했어요. 베스트 프렌드까지 죽고 저만 살아남았네요.”
“결과는 내 몸만 망가지고. 좋아했던 사람은 다 떠나고, 몸 망가진 것만 남았어요. 정말 애처로워요. 정말 아까워요. 다 막고 싶고 이렇게 바른 길로 이끌어 주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절대 안됩니다.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에요. 육체적인 즐거움은 잠깐 느낄 수 있지만은...”

동성애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그들의 죄를 면죄부 마냥 덮는 널찍한 담요인가? 아니면 그들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인가?

마지막으로 신학춘추는 선을 넘어섰다. 넘지 말아야할 선까지 넘고 말았다.

제7면의 「화두- 이야기를 시작하다」의 부제목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 ‘무당’ 정순덕을 만나다”이다.

▲제7면의 「화두- 이야기를 시작하다」의 부제목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 ‘무당’ 정순덕을 만나다”이다. ©이승찬

무당이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었던가?’ 성경에 하나님은 무당을 싫어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레20:6,28; 신18:11, 역대하33:6) 신학춘추가 인터뷰한 무당 정순덕은 이렇게 말했다. 「“원신(原神)을 모시는 무당은 하늘 즉 신의 대리인으로 신도들을 대합니다.”」

원신이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행16:16).

신학춘추는 정순덕이 기독교에게 호감이 있는 착한 사람이고 영력이 있는 신령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보통은 무당은 기독교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제 기독교인도 귀신 들린 무당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긴장 풀라는 것인가?

정순덕은 인터뷰에서 “그때 안수기도를 하는 걸 보고 있는데 제 눈에 병이 아주머니 몸에서 나가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러한 이야기를 목사님께 하니 목사님이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귀신은 영이므로 영의 세계를 알아보는 법이다. 사도행전 16장의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도 바울을 영적으로 알아보았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다!”(행16:17)

그러자 바울은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16:18)

어느 때부터 귀신 들린 무당이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신학춘추의 신학(神學)이 대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하늘과 땅을 잇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아닌가?!

땅 위를 사는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것들을 주시는 분은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1:3)”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땅과 하늘이 화목하게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이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하늘과 땅을 잇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시니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신학춘추는 동성애를 옹호하고 확산시키는 섬돌향린교회(롬1:32)의 주장을 약간의 여과도 없이 그대로 기사화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귀신 들린 무당에게 내어주었다. 동성애라는 육적 음란(롬1:26-27)과 예수의 자리에 무당을 두는 영적음란을 범한 것이다. ‘fornication’이라는 영어단어는 흥미롭게도 육적 음란과 영적 음란을 같이 다루고 있다. 영적인 음란은 육적음란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for·ni·ca·tion [fɔ́ːrnəkéiʃən] ①사통, 간음 ②우상 숭배」(동아 프라임 영한사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학교신문 '신학춘주'는 발행인이 임성빈 총장이며, 편집인 겸 주간은 하경택(구약학) 교수다. ©이승찬

신학춘추의 신학관이 우려스럽다. 신학춘추의 이러한 기사들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

이에 필자는 다음 호에 무당 기사 정정문을 게시할 것을 제안한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언론이 보도하지 않아 감추어진 동성애의 진실을 알릴 수 있도록 반론보도를 게재하여 장신대학생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길 제안한다.

이와 함께 신학춘추의 발행인 임성빈 총장님과 편집인 겸 주간 하경택 교수님께도 책임있는 응답을 기대한다.

글ㅣ이승찬 전도사(하늘교회‧장신대 1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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