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브루스 팔리의 기고글인 '하나님의 이끄심에 헬스장에서 낯선 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 만남이 그의 삶을 바꿨다'(God nudged me to talk to a stranger at the gym. It changed his life)를 10월 3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브루스 팔리는 수십 년간 목회 사역을 감당했으며, 2012년부터 2024년까지 알파 USA의 오하이오 네트워크 책임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돕는 ‘유니티 호프 프로젝트’를 설립해 대표로 섬기고 있다. 기독교선교연맹(C&MA) 소속 목사로, 아내 콜린과 50년 넘게 함께하며 두 딸과 네 손주를 두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는 헬스장에서 브라이어(Briar)를 처음 만났다. 팔을 덮은 문신이 먼저 눈길을 끌었지만,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그의 눈에 어린 슬픔이었다.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강한 마음도 들었다.
필자는 이러한 이끌림을 성령의 ‘작은 재촉’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해 잠깐의 어색함을 감수하라는 초대다. 우리도 일상에서 비슷한 마음을 느끼지만, 행동에 옮기기 전에 여러 이유를 들어 물러서곤 한다. 바쁘거나 어색해서, 혹은 다른 사람이 더 잘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불편함을 피하려는 마음 때문에 누군가와 연결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필자는 용기를 내어 브라이어에게 다가갔다.
문신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된 만남
처음에는 팔에 새겨진 문신에 관해 물었다. 브라이어는 다소 경계했지만, 문신에 담긴 사연을 조금씩 들려줬다. 그 이야기에는 상처와 고통이 배어 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직업 이야기로 이어졌다. 필자가 목회자라고 밝히자 그가 말했다: “저도 교회에 한번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브라이어는 다음 주일 교회를 찾아왔다. 교회에 다닌 경험이 없던 그는 예배 중 눈물을 흘렸다. 이유를 묻자 조용히 답했다: “제게는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그는 이후 약속을 취소했다. 그렇다고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약 1년 동안 간간이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던 부모와 힘겨웠던 가정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브라이어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목사님, 꼭 만나야겠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고백
며칠 뒤 그를 만났을 때 또 다른 강한 마음이 들었다. 필자는 이를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의 말씀’과 관련된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여자친구가 낙태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브라이어는 놀란 눈으로 필자를 바라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에요. 우리는 압박을 받아 그 결정을 내렸고, 그 뒤로 제 삶이 무너졌어요.”
필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며, 그 상처를 혼자 감춘 채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필자는 알파(Alpha) 코스 소책자에 실린 기도문을 건네며 소리 내어 읽어보도록 권했다. 기도를 읽은 뒤 복음의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도문을 읽던 브라이어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지금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저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필자는 솔직하게 답했다. 준비한 설명에 앞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고 계신다고 느꼈다.
작은 만남이 이어준 관계
3주 뒤 브라이어는 그 금요일 밤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필자에게 전화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묻자 그는 다시 시도했을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 고백은 필자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헬스장에서 시작된 짧은 대화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후 브라이어는 필자 부부와 함께 지내며 교회의 알파 코스를 수료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지금도 필자는 처음 만났던 날을 돌아본다. 어색하다는 이유로 다가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기회를 놓쳤을까. 그 질문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더 주의 깊게 바라보게 한다.
더 나은 프로그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서구 교회는 더 나은 사역 전략과 콘텐츠, 전도 프로그램, 사회적 참여 방안을 찾고 있다. 좋은 자료와 지혜로운 계획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필자는 교회의 침체를 프로그램의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작고 개인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에게는 계획한 일정이 잠시 달라지는 것을 감수하며, 눈앞의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셨다는 고백은 바로 그런 일상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헬스장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복음을 만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대사명은 먼 곳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사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평범한 하루의 대화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다.
필자는 이 경험을 통해 세 가지를 배웠다.
▲첫째,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없으면 일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참여하도록 부르신다.
작은 순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귀한 특권이다. 우리는 모든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책임질 수는 없다. 다만 주어진 자리에서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한 도움을 건네며,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다.
▲둘째, 분별력은 실천 속에서도 자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일은 생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는 동시에, 깨달은 바를 실천하며 배워간다. 때로는 자신의 판단을 돌아보고 수정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어색해 보일 가능성을 완전히 없앤 뒤에야 행동하려 한다면, 사람에게 다가갈 기회는 계속 미뤄질 수 있다. 믿음에는 결과를 다 알지 못한 채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와 함께해야 한다. 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신앙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확신을 이유로 상대방의 경계를 무시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과 다르다.
▲셋째, 작은 감동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이끌림은 대부분 극적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거나, 대화를 시작하거나, 조금 더 머물러 이야기를 들어주라는 평범한 마음이었다.
어떤 만남이 한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향한 선한 마음이 들 때, 무조건 미루기보다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물론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성경 말씀과 지혜로운 조언에 비추어 분별해야 하며, 특히 민감한 사안일수록 신중함과 배려가 필요하다. 분별은 경솔함을 정당화하는 수단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구실도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우리 가까이에 말하지 못한 후회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에게 필요한 첫걸음은 거창한 설명보다 진심 어린 관심과 경청일지 모른다.
잠시 멈춰 주변을 바라보고,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어떤 만남을 이어가실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