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선교지다: 평범한 크리스천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대사명

찰리 마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찰리 마크의 기고글인 '“전도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가로막는다'(Evangelism is for professionals? That’s the lie holding us back)를 10월 2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찰리 마크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훈련하는 국제 전도·제자 양육 사역 단체 ‘포지(Forge)’의 대표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예수님은 무리를 바라보실 때 그들을 희망 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으셨다. 돌봄과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로 보셨으며,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으로 바라보셨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이 말씀은 필자가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40년 동안 포지(Forge)는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며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도록 훈련해 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모습을 지켜봤으며, 33만 명이 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훈련했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대사명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에게도 주어졌다

필자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대사명을 자신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그들은 강단에 서거나 무대의 조명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목회자나 전문 전도자가 평생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이미 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을 때, 익숙한 관계는 복음을 나누는 통로가 된다. 사역 프로그램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곳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일꾼’이라는 말은 이 사명이 특정한 직함을 가진 사람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님을 일깨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도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든다.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목회자와 선교사, 전문 전도자의 몫으로 여긴다. 필자 역시 전도자로 사역하고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책임이 전문 사역자에게만 주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 500년 전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평범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수의 성직자만 접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그를 움직였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듣고 배우는 동시에,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여전히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생각이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러한 인식 때문에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

누군가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은 언젠가 찾아올 전문가가 아니라, 이미 그 곁에서 살아가는 신자일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한 번의 만남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때로 하나님은 한 번의 만남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신다. 2023년 소말리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샤바브(Al-Shabaab)의 포섭 대상이던 모하메드(Mohammed)라는 청년이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는 무장단체에 가담하는 대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했다. 이후 그는 그 만남이 자신을 자살폭탄 테러범이 될 수 있었던 길에서 돌이켰다고 고백했다.

그의 이야기는 일상에서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한 사람을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은 이처럼 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복음과 섬기는 하나님은 같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전도와 제자 양육은 분리될 수 없다. 복음을 전한 뒤 그 사람이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돕지 않는다면, 결신자의 숫자에 만족한 채 제자를 세우는 책임을 놓칠 수 있다. 반대로 제자 양육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역시 돌아봐야 한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그 복음 안에서 자라며, 자신이 받은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부름받는다.

선교지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오늘날 서구 교회, 특히 미국 교회는 일상에서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회복해야 한다. 미국 역시 복음이 필요한 선교지다. 세계 곳곳의 그리스도인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먼 나라로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 옆집에 살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일상에서 우리와 마주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다양한 삶의 현장에 두셨다. 목회자나 전문 사역자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관계 속에도 신자들이 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미 다른 누구도 대신하기 어려운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 기회를 알아보려면 먼저 주변 사람들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때로 문화적 혼란과 도덕적 쇠퇴에 몰두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까지 세상이 잘못되어 간다는 증거로 바라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게 보셨다. 지치고 방황하는 무리를 목자 없는 양처럼 여기며 불쌍히 여기셨고, 제자들에게는 그들 가운데서 추수할 곡식을 보게 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바라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은 사회의 문제를 상징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으며 복음이 필요한 한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가도록 부르시는 사람은 옆 책상에 앉아 있거나 길 건너편에 사는 바로 우리일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드리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온 40년의 사역을 통해 필자는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하나님은 자신을 기꺼이 내어드리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들 대부분은 유명해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면 이름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역이 지닌 가치는 명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곁에서 돕는 일은 귀하다.

추수할 것은 여전히 많고, 주님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꾼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사역 현장에서는 영적인 질문을 품고 대화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만나며, 다음 세대 신자들에게서도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갈망을 발견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도를 전문가에게 맡겨둔 채 기다리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면서, 자신도 그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기회가 주어질 때 예수님에 대해 나누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두신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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