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임하셨던 그 동일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오늘날에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임하십니다. 누가는 이 사실을 통해, 예수님께 임하신 성령의 권능이 제자 공동체 속에서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는 진리를 강조합니다. 즉,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특정한 사역자의 영적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교회공동체 전체 안으로 흘러가도록 주어진 사명적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이신칭의, justificatio per fidem). 이 순간, 성령께서 이미 내주하시며, 이는 성령 세례가 실제 삶 가운데 이루어진 은혜의 성취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성령 세례는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만 반복해서 받아야 하는 체험이라기보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과 소속이 완전히 바뀌는 단 한 번의 역사적 은혜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석철효 - 성령으로 여는 자유와 거룩
성경에서 광야, ‘미드바르’는 단순히 황량하고 메마른 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어근과 연결되는 ‘다바르’는 ‘말하다’, 혹은 ‘말씀’, ‘사건’을 뜻한다. 이는 ‘광야’가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장소임을 보여 준다. 고통스러운 광야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강제로 잠재우며, 귀가 둔해진 우리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자리이다. 또한, 광야의 동풍은 세상에 넋을 빼앗긴 우리의 시야를 강제로 가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믿음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외친다. 하지만,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응답이 없음에도 나를 신뢰하며 한 걸음 더 내딛는 신실한 이에게 닫힌 문을 열어 기적을 베풀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돌멩이를 쥐고 떡이 되게 해 달라며 울부짖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우리가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마음속 우상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침묵이야말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박해숙 - 바람 부는 광야
하나님께로 들어 올려지는 것은 오직 내려감으로써만 가능합니다. 물이 그 본성을 바꾸어 산 위로 흐르지 않듯이, 사람도 교만으로는 결코 자신을 하나님께로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 죄만큼 절망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정직하고, 깊고, 철저히 참되며, 자신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죄의 고백, 그것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그에게 무조건 의미 없다는 것이 하나의 죽을병이되, 결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바로 생명에 이르는 병인 사람은 말입니다. 생명은 바로 한 가지가 그에게 무조건 중요하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용서를 찾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기를 배우려거든, 정의의 엄격함이 아니라 사랑의 온유함을 두려워하기를 배우십시오! … 내가 도망갈 수 있는 한 곳이 있습니다. 사랑에게로입니다.
쇠렌 키르케고르 – 성찬대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