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나라의 교회 현실은 잃은 양 한 마리보다는 남아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에게 매우 집중합니다. 목회자들조차 아흔아홉 마리를 데리고 목회하는 목사를 성공했다고 여깁니다. 본인도 자신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회자라고 생각하겠지요. 아흔아홉 마리 중에는 세상적으로 안정되고 지식도 있고 명예도 있고 성공한 이들이 많아서 더 큰 일들을 얼마든지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큰 목장을 지어 더 많은 양을 거느리는 목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잃은 양 한 마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찾는다 해도 크게 다쳤거나 오랫동안 방황하느라 지쳐 있고, 돈도 없는 상태라서 오히려 도와주어야 할 형편입니다. 이 한 마리를 잘 돌보아 준다고 해서 양이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알아주거나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적어도 목자라면 아흔아홉을 포기하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김서택 - 크리스천 생존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만드셨습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아픔도, 병듦도 없었고 하나님과 매일 기쁘게 대화하는 완전한 안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뱀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아름답던 동산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람의 몸에는 병듦과 슬픔, 그리고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참 좋으신 하나님은 죄를 지어 숨어버린 아담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며 따뜻한 사랑의 음성으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피 흘린 어린 양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따뜻하게 덮어주셨습니다. 어르신,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허물이 많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사랑의 옷으로 감싸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규근 - 하늘가는 밝은 길
중국이 공산화되고 종교 탄압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외국 선교사가 철수했습니다. 그분은 남으셨습니다. 모두가 떠나는 것이 상식이던 자리에서 혼자 남는 일은, 다수의 판단을 근거로 삼지 않겠다는 결정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실존적 결단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마 순종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위적으로 나무잎 치마로 수치를 가리우려는 저 범죄한 내외”와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종교적 노력도, 도덕적 성취도, 심지어 선교적 성공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나뭇잎 치마가 될 수 있습니다. 선교사 자신이 첫 번째 선교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는 선교사만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자유롭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오석환 - 방지일 목사의 실존적 선교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