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의 기고글인 ‘장미꽃과 꽃봉오리, 가시를 통해 얻는 새로운 시각’(Gaining perspective from the rose, bud, and thorns)를 10월 1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해리스 박사는 컨설팅 회사인 Avenir Leadership Institute를 이끌고 있으며 이 단체는 전 세계에 필요한 리더 양성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장미는 아름답지만 줄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정교하고 연약한 꽃을 바라보면, 무심코 움켜쥐는 손길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지킬 장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과 연약함, 보호와 아픔이 하나의 식물 안에 공존하는 셈이다.
최근 필자는 리더십 전략 기획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흔히 사용하는 SWOT 분석 대신 ‘장미, 봉오리, 가시’라는 활동을 이끌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현재의 일에서 만족과 보람을 주는 것은 장미로, 아직 펼쳐지지 않은 가능성과 기회는 봉오리로, 직면한 어려움은 가시로 표현하며 함께 살펴보는 방식이다. 참석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건설적인 토론이 이어졌고 의미 있는 결정도 내려졌다.
이 활동은 조직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데도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이 방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좋은 것에서 출발하면서도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가능성, 연약함과 고통이 삶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우리는 날카로운 가시에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곁에 남아 있는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놓치기 쉽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가시에 시선을 빼앗겼던 어린 시절
필자가 일곱 살 무렵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갖게 됐을 때의 일이다. 요즘에는 훨씬 어린 나이에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들도 있지만, 당시 필자가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형편은 지금과 달랐다.
친구 린턴이 자전거 배우는 것을 도와줬다. 그는 자전거를 붙잡은 채 뒤에서 함께 달렸다. 그러다 지쳤는지 손을 놓고 멈춰 섰고, 필자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 순간 꽃기린이 가득한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스도의 가시’라고도 불리는 이 식물에는 예쁜 붉은 꽃과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다. 필자는 그 화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자전거는 이상하게도 그쪽을 향했다. 결국 화단으로 그대로 돌진하고 말았다.
손과 무릎에 박혔던 가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몸이 움츠러든다.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갈 때는 주의가 필요했다. 일곱 살 아이에게는 잊기 어려운 경험이자,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기억으로 남았다.
장미: 감사할 것을 먼저 발견하다
누군가 지금 자신의 삶에서 장미와 봉오리, 가시는 무엇인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먼저 장미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감사할 것을 찾는 일이다.
빌립보서 4장 8절은 참되고 경건하며 옳고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삶의 어려움을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의식적으로 마음을 기울이라는 초대다.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은 이후에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문제만을 출발점으로 삼을 때와 감사할 것을 먼저 떠올릴 때,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힘겨운 시기에는 감사할 것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억지로 거창한 이유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곁을 지켜준 사람, 잠시 누린 평안, 작은 진전처럼 일상에 남아 있는 선물을 차분히 돌아보면 된다. 그것을 알아보고 기뻐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봉오리: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가능성을 돌보다
다음은 봉오리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은 가능성이 있다. 봉오리가 모두 꽃을 피우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존재를 알아보고 돌보며 자랄 환경을 마련해 주면 꽃을 피울 가능성은 커진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더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새롭게 배울 기술일 수도 있고, 용기를 내어 받아들일 과제나 더 깊이 가꾸어야 할 우정일 수도 있다. 봉오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관심과 돌봄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가능성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안수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권면했다(딤후 1:6). 이미 주어진 은사를 소홀히 두지 말고 힘써 사용하라는 뜻이다. 봉오리를 돌보는 일도 이와 닮았다. 없는 가능성을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주어진 것을 알아보고 가꾸는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선물이 주어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작은 관심과 실천이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가시: 어려움을 삶의 전부로 여기지 않다
마지막으로 가시를 살펴본다. 가시가 삶의 최종 결론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다루는 것은 아니다. 먼저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돌아본 뒤에야 어려움도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좋은 것과 소중한 선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가시가 삶 전체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다. 어려움을 가볍게 여기거나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어려움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돌보아야 하는지, 어떤 도움과 변화가 필요한지 살펴볼 수 있다.
어떤 고난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계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하며,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깊어질 수도 있다. 가시를 돌아보는 일은 아픔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할 길을 찾는 일이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고백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궁핍과 풍요를 비롯한 여러 형편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장미와 봉오리, 가시가 함께 있는 삶에서도 우리를 붙드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감사할 것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돌보며 어려움을 견디는 힘 역시 그분 안에서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