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아짐 아브라힘 박사의 기고글인 '니카라과는 독재자들이 기독교인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보여준다'(Nicaragua shows why dictators are afraid of Christians)를 10월 1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아짐 이브라힘(Azeem Ibrahim) 박사는 뉴라인스 전략정책연구소(New Lines Institute for Strategy and Policy)의 최고전략책임자(Chief Strategy Officer)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종교 행렬을 두려워하는 정부의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와 로사리오 무리요 정부는 수년에 걸쳐 기독교인들의 공개적인 예배와 종교 활동을 조직적으로 제한해 왔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당국은 사순절 기간에 400건이 넘는 십자가의 길 행렬을 금지했다. 성주간 행사도 4년 연속 제한됐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6년 9월까지 금지된 종교 행렬과 공개적인 신앙 활동은 2만7,286건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은 종교적 불관용을 넘어 현대 권위주의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독재자는 정당이나 언론인, 반정부 인사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가의 통제 밖에서 사람들의 신뢰와 충성을 얻을 수 있는 기관도 경계한다. 교회는 그러한 독립적인 권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니카라과의 사례는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종교 활동에 대한 제한은 개별 성직자의 발언을 제재하는 수준을 넘어 교회의 조직과 일상적인 신앙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치 위기 이후 강화된 교회 탄압
탄압은 오르테가 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적인 정치 위기로 번진 2018년 이후 더욱 심해졌다. 당시 교회는 시위대에게 피신처를 제공했고, 성직자들은 인도주의적 지원에 나섰다. 가톨릭 지도자들은 정부와 시위대 사이의 중재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교회를 종교 기관인 동시에 독자적인 사회적 권위를 지닌 세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의 충돌은 정부를 비판한 일부 사제와의 일시적인 갈등에 그치지 않았다. 종교 지도자들은 체포되거나 투옥됐고, 추방 또는 귀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2022년 이후 200명이 넘는 가톨릭 성직자가 강제로 망명하거나 추방됐으며,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개신교와 복음주의 공동체 역시 탄압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종교 단체들의 강제 해산과 자산 몰수도 이어졌다. USCIRF는 2025년 1월에만 개신교와 가톨릭 재단 등을 포함한 비영리단체 15곳이 정부에 의해 해산됐다고 보고했다. 당국은 종교 지도자와 기관에 반역, 주권 침해, 사이버범죄, 자금세탁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왔다.
압박은 일상적인 종교 활동에도 미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사제들은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목회자들은 설교에서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성직자 추방으로 인력 부족을 겪던 4개 교구에서 사제와 부제의 서품식이 금지됐다. 한동안 여행객의 성경 반입을 막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권위주의가 두려워하는 것은 공동체의 자율성이다
강력한 국가 권력을 가진 정부가 설교 내용과 성직자의 이동, 거리의 종교 행렬까지 통제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권위주의 정권이 요구하는 것이 단순한 법적 복종을 넘어 사회 전체에 대한 통제이기 때문이다. 독립적으로 모이고 행동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공간은 그러한 통치에 장애물이 된다.
정부는 야당을 불법화하고 언론사를 폐쇄하며 비정부기구의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대학도 국가 통제 아래 둘 수 있다. 그러나 종교 기관은 통제하기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정부가 만들지 않은 관계망과 건물, 전통과 지도체계가 있으며, 국가와 별개로 권위와 정당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궁극적인 권위가 국가를 초월한다고 가르친다. 국가가 모든 권위의 최종 근원이라고 주장할 때, 기독교는 국가 역시 더 높은 도덕적 기준 아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모든 기독교 공동체가 정치적 반정부 세력이라는 뜻은 아니다. 종교계 인사를 향한 모든 조치가 신학적 적대감에서 비롯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핵심은 공동체의 구조적 자율성이다. 독립적인 종교 공동체는 집권당의 허락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서로를 돕는 공간을 제공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려는 정부는 바로 그 자율성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종교 탄압은 더 광범위한 인권 침해와 연결된다
유엔 조사관들의 발표도 이러한 맥락을 보여준다. 지난 9월 유엔 니카라과 인권 전문가 그룹은 국가 기관들이 반정부 인사로 간주한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탄압하는 과정에서 강제실종과 고문, 자의적 구금 등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조사관들은 2023년 이후 탄압 대상이 교회 구성원과 원주민 지도자, 전직 정부 관리 등으로 확대됐다고 보고했다.
니카라과 정부는 통치 방식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거부해 왔다. 정부에 비판적인 종교 지도자와 기관을 국가에 대항하는 정치 세력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가톨릭교회와의 갈등은 때로 외교적 충돌로 이어졌다.
지난해 니카라과 외무부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 온 롤란도 알바레스 주교가 망명 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바티칸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탄압이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 공동체로도 확산되는 상황을 일부 성직자와 정부 사이의 갈등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종교 지도자 개인에 대한 제재와 함께 단체 해산, 재산 몰수, 예배와 교육의 제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특정한 비판자를 침묵시키는 것을 넘어 독립적인 공동체가 존속할 기반을 약화시키는 조치다.
종교의 자유는 사회의 독립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종교적 박해를 인권 정책의 주변적인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종교 공동체에 대한 탄압은 정치 권력에서 독립된 기관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의 조기 경보일 수 있다.
정부가 사람들이 어디서 기도할지, 목회자가 무엇을 설교할지, 거리에서 종교 행렬을 할 수 있을지, 다음 세대의 성직자를 어떻게 양성할지까지 결정한다면 문제는 예배의 자유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의 통제와 별개로 존재하는 사회적 영역을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된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국가를 넘어서는 권위를 고백하고, 그 믿음에 따라 사람들을 연결한다. 모든 교회가 정치적 저항에 나서지 않더라도 그 독립적인 존재 자체가 권력의 절대화를 제한한다. 바로 이것이 독재자들이 기독교인을 두려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