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교회에서 가장 많이 말해지고 있는 말 중에 하나다. 그러나 복음은 거의 설명이 되지 않고 있는 말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사실과 현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반드시 진지하게 숙고해야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복음이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해야 믿음이 오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사람이 그 나라를 보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일도 복음을 전해야 가능해지는 일이다. 복음이 막연하면, 이 모든 것이 막연해지고 추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복음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믿음도 구원도 교회도 신앙생활도 선교도 모두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되고 만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복음이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과 다른 것이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 놀랍게도, 그리고 물론 당연하게도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다.
이상현 - 복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경공부는 단순히 교리를 외우고 주입하는 자리가 아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는 거룩한 과정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찾는 일에는 철저한 신학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접근은 결코 닫힌 관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서로 다른 네 가지 시선을 담고 있듯이, 우리는 성경을 보는 관점이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성도는 누구나 한 사람의 해석자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다른 이 역시 한 사람의 해석자라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주의적 성경관에 갇힌 일부 성도들은 배우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신학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며 끝내 정죄하려는 마음으로 모임에 참여한다.
김주용 외 6명 - 선을 넘어 다리를 놓다
하나님은 단지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제신 분(I AM)으로 지금 여기 임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출애굽의 시작도 신음과 부르짖음이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로 백성을 부르시며 역사의 주권이 오직 당신께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여정은 고통을 어떻게 해걸할 것인가보다, 고통의 자리에서 '나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우리는 설명보다 멈추는 시간, 이해보다 의식하는 시간, 결론보다 머무는 시간을 선택하며, 고동을 제거하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 이미 임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정렬하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그 임재는 우리를 언약의 자리(시내산)로 이끌어, 거룩의 질서와 동행의 방식(성막) 안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와 거하시게 합니다.
황웅렬 - 나는 죽고 말씀이 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