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를 건너온 한 신학자의 비망록

[신간]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도서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성전도 제사도 없는 이방 땅, 바벨론 강가에 밀려나 앉은 것 같아 울었던 날들이 우리 삶에도 존재한다. 신간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은 평생을 제도권 밖에서 자발적 유배자로 살아온 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의 내밀하고 정직한 신앙 비망록이다. 강영안, 김관성, 김진혁, 박영호 등 교계 주요 인사들이 추천한 이 책은, 상처와 실패의 한복판에서 길을 묻는 이들에게 따뜻하고 단단한 위로를 건넨다.

원망을 부르심으로 바꿀 때 열리는 ‘갈릴리’

저자는 감옥에 갇히거나 섬으로 귀양을 간 적은 없으나, 자신의 인생 전체를 ‘유배’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과 개척 교회의 나락, 사역과 생계의 기로에서 서성이며 주류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변방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원망하며 주저앉으면 그곳이 바벨론이지만, 부르심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그곳이 곧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갈릴리’가 됨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가장자리에 서 있었기에 비로소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오늘날 변방으로 밀려나 생존을 견뎌내는 수많은 현대인에게 깊은 공명(共鳴)을 일으킨다.

정의와 자비를 통합한 ‘아빠, 엄마 하나님’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는 결핍과 은혜가 교차하던 시절을 회고한다. 1980년대 최루탄이 흩날리던 거리에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멈칫하고 ‘용서와 화해의 정치학’이 담긴 비폭력 그리스도를 만난 청년기의 치열한 사유가 돋보인다. 특히 눈 내리는 기차 안에서 심판과 훈련의 엄격함(부성)과 잃어버린 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용납(모성)을 통합하여 ‘아빠, 엄마 하나님’을 깨닫는 대목은 짙은 신학적 통찰을 안겨준다.

거실 가정교회부터 청소년 인문학 교실까지

후반부는 목회 현장의 고단함과 사명의 연대기로 채워졌다. 억울한 자기 의를 내려놓고 거실에서 시작한 가정집 교회, 위기 청소년들과 함께한 인문학 교실의 생생한 현장이 담겨 있다. 비판받지 않는 안전한 공간에서 마음껏 책을 읽고 질문하며 자아를 단단하게 세워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를 향한 목회적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귀중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 책은 성공한 목회자의 영웅담이나 빤한 간증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어느 자리에서 어떤 얼굴로 찾아오셨는지를 붙들어 둔 사적 고백이다. 신앙의 화려한 언어는 넘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사람들,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이제 당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라며 묵직한 용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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