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겨울이면 한국 교회의 수많은 단기 선교팀이 세계 곳곳으로 떠난다. 열정과 헌신을 다해 공연을 준비하고 물질을 쏟지만, 정작 이듬해 같은 선교지를 다시 찾는 이는 드물다. 매년 새로운 팀이 도착해 비슷한 세족식과 짧은 복음 제시를 반복하는 것이 오늘날 단기 선교의 씁쓸한 현주소다.
신간 『단기 선교는 없다』는 매년 반복되는 소모적인 선교 방식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 정기영은 목회자나 전임 선교사가 아니다. 2005년 처음 미얀마로 떠난 뒤 18년 동안 휴가와 연차를 쪼개어 서른 번 넘게 같은 나라를 찾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단기’라는 이름 뒤에 숨은 무책임함
이 책은 단기 선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이 짧을수록 더 긴 시간과 깊은 책임을 전제로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10년 동안 매년 선교를 다녀왔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한 ‘10년 선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선교는 선교일 뿐입니다. ‘단기’라는 말이 때로는 우리의 기대치와 책임을 낮추는 안전장치가 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노력 없이, 다시 돌아올 기약 없이 치러지는 일회성 행사는 현지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선교가 아니다. 현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벤트처럼 ‘잠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나누며 ‘오래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저자가 18년의 세월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깨달음이다.
영웅담을 뺀 정직한 실패와 성장의 기록
선교 현장의 화려한 성공담만 늘어놓지 않는다는 점도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선교대원 중심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시행착오, 언어 공부를 미루었던 후회, 동역자 간의 갈등과 회복 등 뼈아픈 실패담을 투명하게 기록했다.
전체 4부 13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선교의 본질을 짚어내는 것에서 출발해 교육·의료·전도 등 생생한 사역 현장을 담아낸다. 나아가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식당, 숙소, 날씨, 상비약 등 선교팀이 반드시 알아야 할 실무 정보까지 꼼꼼하게 정리했다. 256쪽의 풀컬러 지면 위로 20년 가까이 쌓인 거칠고도 선명한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한 팀과 한 나라가 통과해 온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직장, 선교를 막는 장벽이 아닌 ‘통로’
직장과 가정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선교를 주저하는 평신도들에게 이 책은 큰 위로와 도전을 준다. 저자는 직업이 선교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 티켓과 체류 경비를 공급해 주는 든든한 ‘생명줄’이자 선교를 지속하게 하는 통로라고 고백한다.
『단기 선교는 없다』는 처음 선교를 준비하는 청년과 실무자, 그리고 다음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동역자에게 건네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뜨거운 현장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