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일이다. 그때, 내가 아픈 가슴을 안고 백양로를 걸어 나오던 그때, 실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물었던 그때, 주님께서는 이미 새 일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만일 신과대학 시험을 보고 합격이 취소되는 이 일이 없었다면, 과연 세브란스병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물론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기에 어떤 길이라도 열렸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합격과 합격 취소의 이면에서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깊이, 깊이 느꼈다. 정말 이렇게 연결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하고 오묘했다. 주님 앞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털어놓고 한동안 잠잠히 앉아 있었다. 그저 “주님”만 부르고 있었다. 그때 영혼 속에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짧은, 그리고 간단한 말씀이었다. “네 교회냐? 내 교회지.” 이 음성을 듣는 순간 내 영혼에 조용히 빛이 비쳐옴을 느꼈다. 아멘, 그렇다. 이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교회다. 주님의 교회라면 주님께서 알아서 인도해 주시지 않을까? 나는 주님께 응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교회입니다. 이제 주님께 맡기고, 내려놓겠습니다. 주님께서 여기서 멈추라면 속회 갱신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나 가라고 하시면 도전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조영진 -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겸손은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주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겸손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처신을 통해 나타나고 실행되는 겸손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상생활이라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중요하며 영생에 대한 시험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이야말로 정말로 무엇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는 정신인지를 분명히 증명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바라보게 되는 것은 바로 아무런 경계심이나 꾸밈이 없이 드러나는 그와 같은 순간이다. 겸손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또한 겸손한 사람이 행동하는 방식을 알기 위해서는 당신이 직접 그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이런저런 과정을 함께 따라다녀 보아야 한다.
앤드류 머레이 -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겸손과 순종
빛이 생겼다는 것은 결국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빛의 창조는 결국 시간의 창조입니다. 그 전에는 영원부터 영원입니다. 그런데 태초에 빛이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이 세상에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간 아래에 있습니다. 그 시간이 창조된 사건이 우주의 첫째 날 사건입니다. 원어를 보면 이 옷은 단순한 가죽 쪼가리가 아니라 '케토네트(Ketoneth)'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케토네트는 무릎 아래까지 덮는 아주 긴 겉옷을 뜻하는데, 성경에서 주로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입는 거룩한 예복을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비록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보내시지만, 그들에게 죄수의 옷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제사장의 옷'을 입혀 주셨다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김정민 – 태초에 하나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