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자동 조종 장치를 꺼라: 당신의 삶을 갉아먹는 세 가지 거짓된 속담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브라이언 해리스 박사의 기고글인 ‘지혜가 더 이상 지혜가 아닐 때: 익숙한 속담에 질문을 던지다’(When wisdom isn't wisdom: challenging popular sayings)를 8월 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해리스 박사는 컨설팅 회사인 Avenir Leadership Institute를 이끌고 있으며 이 단체는 전 세계에 필요한 리더 양성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사람들은 종종 필자에게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글쓰기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묻곤 한다.

그럴 때면 필자는 “삶의 지표로 삼을 30가지 잠언”이라는 책을 쓰고 있다고 답한다. 아직 완성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한 달 동안 매일 하나씩 곱씹어볼 핵심적인 생각을 제시하고, 31일까지 있는 달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구성하는 아이디어가 꽤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몇몇 속담과 흔한 격언들이 실제로는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처음에는 현자의 말처럼 깊이 있어 보였던 문장이 알고 보면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때로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씁쓸하다.

여기 필자가 과거에는 배웠지만 이제는 단호히 반대하게 된 세 가지 속담이 있다. 어쩌면 독자에게도 그런 말이 몇 가지쯤 있을지 모르겠다.

첫 번째: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필자는 초등학생 시절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Curiosity killed the cat)”는 말을 배웠다.

그런데 진지하게 묻고 싶다. 대체 어떤 초등학교 교사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에게 이런 말을 가르친단 말인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언가를 지나치게 캐묻다가 큰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처럼 들린다. 마치 고양이들이 호기심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이들의 끝없는 질문 공세가 피곤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끊임없이 “왜요?”, “그런데 왜요?”, “왜 그런 건데요?”라고 묻는 아이를 상대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단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속담은 배움과 성장에 대한 일종의 불신임 투표처럼 들린다. 호기심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의 상태를 무미건조하게 반복할 뿐이다.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이 속담이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고방식과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면 기존 질서 역시 좀처럼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에 맞서 이런 원칙을 제안해 보면 어떨까? 적어도 다섯 번 ‘왜?’라고 묻지 않는다면 진리에 도달하기 어렵다.

입에 착 감기는 속담은 아니지만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다. 진리는 종종 한 겹이 아니라 여러 겹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왜?”에 대한 답을 얻은 뒤 다시 “그런데 왜 그렇지?”라고 묻고, 그 답에 또다시 “왜?”라고 질문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난 이유 아래 숨어 있던 더 깊은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다섯 번의 “왜?”는 우리를 최초의 설명 너머로 이끈다. 여기서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선언하셨다면, 진리는 그리스도인에게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왜곡한 모조품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진리가 아닌 것에 적당히 머물러서는 모든 진리의 궁극적인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충분히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그런데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다섯 번 던져보라.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과정을 여기서 모두 설명하는 대신, 『왜 기독교는 아마도 진리인가(Why Christianity is Probably True)』라는 자신의 책을 조금 뻔뻔하게 홍보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두 번째: “몽둥이와 돌은 뼈를 부러뜨려도 말은 결코 해치지 못한다”

“몽둥이와 돌멩이는 뼈를 부러뜨릴지 몰라도, 말은 결코 너를 해치지 못한다(Sticks and stones will break your bones but words will never harm you).” 정말 그럴까?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린 사람에게 이 말을 건네보라. 이 속담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언젠가 이 속담을 이렇게 바꿔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몽둥이와 돌은 뼈를 부러뜨리지만,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말이 사람을 깊은 절망에 빠뜨리고 삶의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잠언 18장 21절은 이에 대해 매우 날카롭게 말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삶과 죽음이 혀의 힘에 달려 있다는 표현은 매우 강렬하다. 그만큼 우리가 내뱉는 말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수로 잘못된 말을 했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도 “말이 무슨 대수냐”, “그깟 말로 사람이 다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 영향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말에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도 있고, 무너뜨리는 힘도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세 번째: “가진 천에 맞추어 외투를 재단하라”

“가진 천에 맞추어 외투를 재단하라(Cut your coat according to your cloth).” 우리말로 하면 “분수에 맞게 살아라” 정도의 의미다. 이 속담은 앞의 두 문장만큼 거슬리지는 않는다. 분명 어느 정도 현실적인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자원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하게 살아가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이 속담 뒤에는 때때로 이런 암묵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을 수 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라.”

하지만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우리의 삶과 사회에는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많다. 만약 우리가 가진 천이 만들어야 할 옷에 턱없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생 수준 이하의 현실에 체념한 채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그것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가?

필자는 오히려 이런 표현을 좋아한다: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향해 있다. 성경은 변화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린다.

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인가? 지금의 세상이 본래 있어야 할 모습 그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꿈을 너무 쉽게 짓밟아서는 안 된다. 더구나 우리의 원형이 되시는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세상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어떻게 현실 속에서 살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지금 존재하는 현실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가진 천에 맞추어 외투를 재단하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그곳에 다다를 수 없다.

배우는 것만큼 중요한 ‘배운 것을 비워내는 일’

그렇다면 이 긴 이야기의 요점은 무엇인가? 유통기한이 지난 몇 가지 속담을 비판하며 잘난 체하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필자가 살아오며 깨달은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인생이 단지 ‘배우는 과정(learning)’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생은 동시에 ‘배운 것을 비워내는 과정(unlearning)’이기도 하다.

우리는 새로운 지혜를 배우는 동시에 과거에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잘못된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내려놓아야 한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말은 절대 너를 해치지 못한다.” 이런 문장들이 삶과 사고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면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태도와 격언, 가치관에 의해 일종의 ‘자동 조종(auto-pilot)’ 상태로 움직인다. 무엇을 왜 믿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익숙한 문장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잠시 멈춰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어온 말들을 하나씩 꺼내어 살펴보고, 그것들이 정말 진리인지 다시 질문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억누르는 낡은 말 대신 생명을 주는 진정한 말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이신 그분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하실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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