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BK21 연구팀, 고린도전서 ‘엑트로마’ 의미 새롭게 조명

임은영 교수, ‘엑트로마’를 유산·사산 경험과 연결해 해석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4단계 BK21 '초연결 시대의 미래 종교 교육연구팀'이 지난 14일 미국 미들버리대학 신약학 교수 임은영 박사를 초청해 '한 조산아: 재생산 상실과 여성의 의례적 경험을 통해 다시 읽는 고린도전서'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개최한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신원 제공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자신을 가리켜 사용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는 표현이 여성들의 재생산 경험과 고대 사회의 의례 문화를 통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연구가 제시됐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4단계 BK21 '초연결 시대의 미래 종교 교육연구팀'(팀장 임성욱 교수)은 지난 14일 미국 버몬트주 미들버리대학(Middlebury College) 신약학 교수인 임은영 박사를 초청해 "'한 조산아': 재생산 상실과 여성의 의례적 경험을 통해 다시 읽는 고린도전서(One Untimely Born: Reading 1 Corinthians through Reproductive Loss and Women's Ritual Experience)"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개최했다고 최근 밝혔다.

성서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 속 여성과 아동, 사회적 약자의 삶을 연구해 온 임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등장하는 그리스어 '엑트로마(ἔκτρωμα)'를 중심으로, 고대 물질문화와 여성들의 실제 삶을 함께 살펴보는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문헌 연구를 넘어 고고학과 물질문화 연구를 접목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종교와 신앙이 여성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조명했다.

◆ ‘엑트로마’를 둘러싼 새로운 성서 해석… 여성들의 경험에서 의미를 찾다

임 교수는 그동안 학계에서 '엑트로마'가 바울 자신의 부족함과 겸손을 표현하는 수사적 장치로 주로 이해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만약 이 표현을 들은 고린도의 여성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며 기존 연구와 다른 해석의 출발점을 제시했다.

'엑트로마'는 유산되거나 사산된 아이를 의미하는 단어로도 사용됐으며, 당시 여성들에게는 단순한 비유 이상의 현실적 경험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임 교수는 성서와 고대 문헌뿐 아니라 부적, 저주 서판, 매장 유적 등 다양한 고고학 자료와 물질문화 연구 결과를 함께 제시했다.

그는 로마 시대 고린도가 아프로디테를 비롯해 데메테르와 코레, 에일레이티이아, 이시스 등 임신과 출산, 영아 보호를 담당하는 여신 숭배가 집중된 도시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시에는 자궁을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믿음에 기반한 이른바 '자궁 마법(uterine magic)'이 여성들의 일상적인 재생산 돌봄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소개했다.

특히 데메테르-코레 신전에서 발견된 저주 서판과 자궁 형태의 보석 부적은 고린도 여성들이 경험했던 임신과 유산, 불임 등의 문제가 종교적 실천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 고고학 자료가 보여주는 고린도 여성들의 삶과 높은 주산기 사망률

강연에서는 고고학 연구 결과도 함께 소개됐다.

임 교수는 아테네 아고라 본 웰(Agora Bone Well)에서 출토된 태아와 영아 유해 459구 사례를 언급하며, 최근 연구에서는 이를 영아 살해의 흔적이 아니라 자연사와 높은 주산기 사망률을 보여주는 사례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유적에서는 산파가 에일레이티이아에게 바친 봉헌물과 부장용 젖병, 정화 의식과 관련된 개의 유골 등이 함께 발견됐다. 임 교수는 이러한 자료들이 고대 여성들이 유산과 사산을 경험한 이후 독자적인 애도와 정화 의례를 발전시켜 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고고학자 셰리 폭스(Sherry Fox)가 분석한 로마 시대 고린도 유골 94구 연구를 소개했다. 연구에 따르면 고린도는 인근 도시인 파포스보다 영아 사망률이 더 높았으며, 주민들의 평균 신장은 상대적으로 작았고 치아에서는 영양 부족으로 인한 에나멜 형성 부전이 더 많이 확인됐다.

여기에 브루스 윈터(Bruce Winter)의 연구도 함께 제시됐다. 그는 고린도가 40년대 두 차례 기근을 겪었고, 고린도전서가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51년에도 다시 기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러한 식량 부족이 임신부와 신생아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죽은 자를 위한 대리 세례’도 여성들의 종교적 실천과 연결 가능성 제기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4단계 BK21 '초연결 시대의 미래 종교 교육연구팀'이 개최한 특별강연 포스터. ©연신원 제공

임 교수는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종합해 볼 때 1세기 고린도는 반복되는 기근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산모와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사회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회적 배경 속에서 고린도 여성들은 '엑트로마'라는 단어를 단순한 비유나 가치중립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고린도전서 15장 29절에 언급된 '죽은 자를 위한 대리 세례' 역시 기존처럼 신비종교의 영향으로만 해석하기보다, 유산과 사산으로 자녀를 잃은 여성들이 아이들의 정화와 구원을 바라는 종교적 실천과 연결될 가능성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텍스트 중심 해석 넘어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삶 조명해야

강연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생물학적 남성인 바울이 여성 경험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는가", "바울이 사용한 어머니와 아이의 이미지는 여성을 차별하는 표현인지, 아니면 서사적 전략인지" 등을 둘러싼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저자의 목소리만을 중심으로 성서를 읽는 기존 해석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바울을 무조건 이상화하거나 반대로 여성 억압의 원인으로만 규정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바울 역시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 아래 살아간 한 인간이었다는 역사적 조건과 한계를 함께 고려하는 시각이 보다 균형 잡힌 성서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특별강연을 기획한 임성욱 교수는 "성경 속 단 하나의 단어에 담긴 여성들의 삶과 고통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이번 강연은 연구팀이 지향하는 '돌봄과 정의에 기반한 해석 공동체'의 방향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성서학을 비롯해 고고학과 물질문화 연구, 여성학을 아우르는 학제 간 접근은 앞으로 신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한편, 임은영 교수는 성서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을 중심으로 여성과 아동, 사회적 약자의 삶을 연구해 왔으며, 대표 저서로는 『어린 아이와 하나님 나라: 마태복음·고린도전서·도마복음 속 유아 이미지』(Entering God's Kingdom (Not) Like a Little Child: Images of the Child in Matthew, 1 Corinthians, and Thomas, 2021)가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읽는 고린도전서와 인종 폭력」(Reading First Corinthians Through Racialized Violence in the Korean Diaspora)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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