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 형사 사법 시스템 내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빈곤층과 소수 종교인 등 소외된 계층에게 집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국제 인권 단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으며 특히 파키스탄 신성모독법에 따라 기소된 기독교인들이 부패한 사법 구조 속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7월 1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국제인권연맹(FIDH)과 회원 단체인 파키스탄 인권위원회(HRCP)는 지난 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32쪽 분량의 '법대 아래서: 파키스탄 사법 시스템의 부패 위험 매핑'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월과 3월 파키스탄 현지 변호사, 판사, 언론인, 시민사회 활동가 등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빈곤과 차별, 사법부의 부패가 맞물리면서 신성모독 혐의를 받는 많은 기독교인이 적절한 법적 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하거나 부당한 기소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인을 표적으로 한 사건의 피해자 대다수는 일용직 노동자나 환경미화원 등 저소득층으로, 이들은 경찰이나 법원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거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할 재정적 여력이 없어 사법 접근성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키스탄 신성모독법 기소 폭증 및 극단주의 여론 압박
국가인권위원회(NCHR) 통계에 따르면 파키스탄 내 신성모독 기소 건수는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신성모독 혐의로 수감된 인원은 2020년 11명에서 2021년 9명, 2022년 64명, 2023년 213명으로 늘어났으며, 2024년 7월 25일 기준으로는 787명으로 폭증했다.
이와 관련해 2024년 1월 펀자브주 경찰 특수부는 소셜 미디어와 메시지 플랫폼을 이용해 청년들을 함정에 빠뜨린 뒤 연방수사국(FIA)에 신성모독으로 고발하는 조직적인 네트워크를 적발하기도 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역시 2025년 보고서를 통해 파키스탄 기독교 박해와 신성모독 고발이 금전적 목적이나 개인적 원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경찰관들이 조작된 고발장(FIR)을 무마해 주는 대가로 뇌물을 요구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신성모독 사건의 경우 일반 형사 사건과 달리 대중과 종교 극단주의 세력의 압박이 거세어 뇌물조차 통하지 않는 특수성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조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경찰과 판사들이 유죄 판결을 요구하는 대중의 거센 압력을 받기 때문에 뇌물을 통한 사건 무마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증언했다. 일부 1심 판사들은 위조된 문서나 모순된 증언 등 명백한 증거 조작을 인지하고도 여론의 반발과 보복을 우려해 이를 묵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법부 내 구조적 편견과 끝없는 재판 지연 실태
소수 종교인과 저소득층을 향한 사법부의 구조적 편견도 문제로 지적됐다. 보고서 인터뷰에 응한 한 변호사는 기독교인 미성년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무슬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위해, 1심 법원이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을 상대로 거짓 고발을 일삼는다는 근거 없는 편견을 판결문에 명시한 사례를 소개했다. 사법부 내에 빈곤층과 소수 종교인들이 범죄와 연루되어 있다는 반빈곤 편견이 존재하며, 이러한 적대적인 법정 환경 탓에 경찰의 고문이나 불법 구금 피해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억울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재판 지연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3월 페이스북에 신성모독 게시물을 올렸다는 혐의로 체포된 무슬림 대학 강사 주나이드 하피즈는 7년에 걸친 재판 지연 끝에 2019년 12월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체포 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항소심 심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 우려 고조 및 전면적인 사법 시스템 개혁 촉구
파키스탄 인권위원회(HRCP)는 성명을 통해 파키스탄 사법부 내 부패가 단순한 일탈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거대 부패 수준으로 구조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샤힌다 이스마일 국제인권연맹 사무총장은 사법부의 부패가 소수자와 같은 가장 취약한 계층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해리스 칼리크 파키스탄 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부패 근절을 위해 판사의 급여 인상이나 법정 내 CCTV 설치와 같은 단편적인 행정 조치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복원하고 부적절한 관행을 부추기는 근본적 요인을 해결하는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사법부 투명성 강화, 감독 기구 개선, 내부 고발자 보호 등 전면적인 사법 행정 개혁안을 권고했다.
한편, 파키스탄 기독교 박해와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세계사법프로젝트(WJP)의 2025년 법의 지배 지수 중 '부패 부재' 항목에서 파키스탄은 143개국 중 123위에 머물렀다. 국제 선교 단체 오픈도어스 역시 2026년 세계 감시 목록에서 파키스탄을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가장 심각한 국가 8위로 선정하며, 구조적 차별과 취약한 법 집행이 소수 종교인에 대한 탄압을 방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