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중심의 이동과 새로운 대화: 모든 신학은 결국 ‘상황적’이다

제임스 테일러. ©chinasource.org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제임스 테일러의 기고글인 '세계 기독교는 이제 다수세계의 신학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World Christianity insists we listen to majority world theology)를 7월 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제임스(제이미) 테일러는 중국내지선교회, 현재의 OMF 인터내셔널을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의 고손자다. 그는 애즈베리신학교에서 학사 과정과 목회학석사, 목회학박사 학위를 마쳤다. 또한 그레이터 보스턴 중국성경교회, 대만 캠퍼스복음주의펠로우십, OMF 인터내셔널에서 사역했으며, 특히 선교 동원과 타문화권 선교, 선교 지도자 훈련에 중점을 두어 섬겨왔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2026년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중화복음신학교(CES) 공동체는 연례행사인 '티모시 린 박사 기념 강좌(Dr. Timothy Lin Lectureship)'를 개최했다. 올해 CES는 에든버러 대학교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의 공동 소장인 알렉산더 차우(Alexander Chow) 박사를 강사로 초청하는 특권을 누렸다.

이번 강좌의 주제는 "신학: 이해를 추구하는 세계적 신앙"이었다. 이 주제에 걸맞게 차우 박사는 창조, 신론, 기독론(예수의 본성과 사역), 구원론, 종말론 등 조직신학의 주요 핵심 주제들을 아우르며 총 9번의 강연을 펼쳤다.

특히 차우 박사는 '다수 세계(Majority World)' 신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 집중했다. 이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 그리고 특정 상황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기본 교리들을 어떻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하는지 조명한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다수 세계'라는 용어가 즉각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표현과 함께 자주 사용되는 이 용어는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그리고 오세아니아) 지역의 기독교 인구를 지칭한다. 또한 여기에는 '서구 사회 안의 다수 세계'—이주를 통해 서구 사회 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번성하고 있는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라틴계 기독교 공동체—도 포함된다.

기독교 인구 구조의 이러한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윌리엄 캐리 시대(1793년)만 해도 전 세계 기독교인의 거의 98%가 서구권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거의 70%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그리고 서구 사회의 다양한 소수 민족 교회들)에 분포되어 있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기독교는 진정으로 '세계적인 신앙(worldwide faith)'이 되었다고 말이다.

이른바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이동함에 따라, 다수 세계 신학은 더 이상 주변부의 흥미거리가 아니라 필수 불가결한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수 세기 동안 우리가 '신학'이라고 불렀던 것은 사실상 '서구 신학'과 동의어였다.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와 (차우 박사가 거듭 강조했듯) 그리스-로마의 철학적 범주에 의해 형성된 유럽과 북미의 틀은 성경을 해석하는 표준적인 렌즈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이제 전 세계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비서구적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는 만큼, '상황화(contextualization)'에 대한 필요성, 즉 다수 세계의 신학자들과 교회의 목소리를 수용할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글로벌 신학 대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다수 세계 신학이 필수적인 이유는, 서구 신학만이 '보편적'이고 다른 모든 신학은 그저 '상황적'이라는 기존의 오만한 전제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차우 박사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듯, 현실에서는 서구 신학을 포함한 모든 신학이 곧 상황적 신학이다.

서구 신학이 종종 개인의 구원이나 법적인 은유(유죄/무죄 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많은 다수 세계 신학자들은 공동체를 중시하고 전혀 다른 관점(예: 명예, 수치, 두려움, 권력, 관계)에서 문화적 역학을 헤쳐 나가는 문화권 속에서 사역하고 있다.

다수 세계 신학자들은 현실에 대한 이처럼 다양하고 암묵적인 이해들을 다룸으로써, 서구의 패러다임이 제대로 된 시각과 틀을 갖추지 못해 간과했던 성경적 진리들을 새롭게 열어젖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폴 히버트(Paul Hiebert)가 전통적인 서구 신학과 선교학(차우 박사의 강연에서도 핵심 주제였던)을 향해 던진 비판, 이른바 '배제된 중간계의 오류(The Flaw of the Excluded Middle)'다. 계몽주의의 발자취를 따라온 서구 신학은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영역이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축소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귀신이나 악령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무지하고 비과학적인 세계관의 산물로 일축되거나, 기껏해야 피상적으로만 인정받곤 한다. 그러나 다수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이 '중간 차원(물질 세계 안에서 역사하는 영적 세계)'이 전도와 제자 양육에 있어 얼마나 실재적이고 거대한 도전인지 금세 깨닫게 된다.

다수 세계 신학은 영적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맞서 거두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해 매우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관점을 제공하며, 우리가 흔들림 없이 서기 위해 어떻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하는지(에베소서 6:10-18) 실질적으로 가르쳐 준다.

나아가, 대부분의 다수 세계가 처한 사회 경제적 상황은 현대 서구 사회보다 성경 속 세계의 모습을 훨씬 더 가깝게 반영하고 있다. 가난, 핍박, 다원성 같은 문제들은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를 관통했던 것처럼 오늘날 다수 세계의 경험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서구 신학의 주된 렌즈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수 세계의 사역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상황에 맞게 치열하게 고민하여 성경적으로 신실하면서도 지역적으로 적실성 있는 해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다수 세계 신학은 전 세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전체를 향한 귀중한 선물이다. 그것은 글로벌 교회가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이해를 올바르게 교정해 주고 온전하게 완성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서구의 사상은 종종 이른바 '거룩한 것(성)'과 '세속적인 것(속)'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지만, 다수 세계 신학은 이러한 이원론을 단호히 거부한다.

'통합된 삶'을 논하는 아프리카 신학자들이든, '총체적 선교(integral mission)'를 강조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관점이든, 이들 모두는 복음이 정치, 경제, 가족, 생태계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이러한 중요성은 무슬림, 힌두교도, 애니미스트, 불교도들 사이에서 전도와 제자 양육을 할 때 종종 사용되는 척도인 'C-스펙트럼(C-Spectrum)' 같은 분석 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는 선교사들이 현지 문화와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하는 방식인 '인지적 성향(cognitive orientations)'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다수 세계 신학자들은 글로벌 교회가 혼합주의(syncretism)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토착화와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다수 세계 신학의 상당수는 핍박,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급격한 사회 변화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벼려졌다. 이러한 역동성은 역설적이게도 다수 세계의 교회들이 거센 시대의 파도를 거슬러 번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른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의 신학'으로 여겨지는 이 신학은 왜 이 지역에서 교회가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배가되고 있는지 설명해 준다. 신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핍박이 오히려 위대한 돌파구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회복 탄력성은 기독교 이후 시대(post-Christian era)에 접어들며 서구 사회와 문화 속에서 빠르게 소외된 소수자로 전락하고 있는 서구 교회들에게 점점 더 깊은 적실성과 훌륭한 적용점을 제공한다.

기독교의 미래는 더 이상 단일 중심적(monocentric)이지 않다. 여러 곳에 권위의 중심이 분산되어 있는 다중 중심적(polycentric) 체제다. 우리는 서구의 학자, 아프리카의 목회자, 아시아의 신학자, 라틴 아메리카의 활동가가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글로벌 대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타이베이의 성도, 나이로비의 학자, 리우데자네이루의 교회 개척자, 리버풀의 목회자가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상황화하는지 서로 귀 기울여 들을 때, 성경적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이해는 무한히 확장된다. 우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어린양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요한계시록 7장 9절의 비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다수 세계의 목소리가 없다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단색의 밋밋한 스케치로 남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은 생동감 넘치는 다차원적인 명작으로 완성된다.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