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다니는 남성 근로자 10명 중 8명 가까이가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업무 공백, 조직 내 눈치 등으로 사용이 쉽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소사업체 근로자의 일·생활 균형 실태와 정책 방향’ 이슈페이퍼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100인 미만 민간 중소사업체 근로자 1010명을 대상으로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에 대한 인지도, 사용 가능성, 활용 경험 등을 조사했다.
육아휴직은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최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다음 달 20일부터는 육아휴직 최소 사용 기간이 기존 30일에서 1주일로 단축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12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주당 근로시간을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로 줄일 수 있는 제도다. 자녀 한 명당 부모가 각각 1년씩 최대 2년까지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하지 않은 육아휴직 기간이 있을 경우 그 기간의 2배를 더해 최대 3년까지 활용할 수 있다.
제도는 알지만 “자유롭게 쓰기 어렵다” 응답 많아
조사 결과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99.2%로 매우 높았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역시 93.7%가 알고 있다고 답해 제도 자체에 대한 정보는 상당 부분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사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인지도와 큰 차이를 보였다. 육아휴직에 대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32.1%에 그쳤다. 반면 ‘필요해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응답은 49.6%, ‘필요해도 전혀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은 18.3%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응답은 26.4%에 불과했다. ‘필요해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응답은 50.5%, ‘필요해도 전혀 사용할 수 없다’는 응답은 23.0%로 조사됐다.
이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알고는 있지만, 실제 직장에서는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성 사용률 더 낮아, 두 제도 모두 사용한 남성 1.6%
두 제도의 실제 사용률도 낮았다.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모두 사용한 적이 없는 응답자는 전체의 61.7%였다. 육아휴직만 사용한 응답자는 25.7%,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만 사용한 응답자는 5.9%였다. 두 제도를 모두 사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6%에 그쳤다.
성별 차이도 뚜렷했다. 여성 근로자 가운데 두 제도를 모두 사용한 비율은 8.8%였지만, 남성 근로자는 1.6%에 불과했다.
반대로 두 제도를 모두 사용하지 않은 비율은 여성 54.2%, 남성 78.8%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남성 근로자 상당수가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에서 사실상 배제돼 있는 셈이다.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라 하더라도 인력 부족, 업무 공백 부담, 대체 인력 확보의 어려움, 조직 내 눈치와 관리자 인식 등이 제도 활용을 제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위원은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은 조직 내 선례 부족과 낮은 수용성으로 인해 더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 공백은 남은 인력이 떠안는 구조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 시 발생하는 업무 공백 처리 방식도 중소기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육아휴직 사용 당시 업무 공백을 ‘남은 인력이 나눠 처리했다’는 응답은 54.7%로 가장 높았다.
반면 계약직 대체 인력을 추가로 고용했다는 응답은 23.5%, 신규 정규직을 채용했다는 응답은 17.1%에 그쳤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업무 공백 역시 ‘남은 인력이 나눠 처리했다’는 응답이 46.5%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제도를 사용하는 근로자뿐 아니라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결국 제도 사용에 대한 부담과 눈치가 커지고, 이는 다시 제도 활용률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보고서는 중소기업의 일·생활 균형 문제가 단순히 제도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제도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조직 여건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정 연구위원은 “정책의 초점은 제도 홍보를 넘어 ‘사용 가능한 제도’로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