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4부: 신학적 고찰 -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탄식에 대하여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실존적인 탄식 앞에 직면한다. "인간은 결코 이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절망이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Flesh)은 나를 배신한 자를 보면 심장이 뛰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파멸하기를 바라는 이기적 본능에 지배받기 때문이다.
이 명제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자연인(Natural Man)으로서의 인간은 절대 할 수 없다. 인간의 의지적 결단, 도덕적 훈련, 종교적 수양으로는 배신자를 향해 창자가 끊어지는 사랑의 심정을 품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누군가 인간의 혈기와 가련한 도덕적 노력으로 이를 흉내 내려 한다면, 그것은 영적 위선으로 끝나거나 자아의 파멸을 고할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를 단순한 '아담의 후손인 인간'으로 머물러 두지 않는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이 된 영적 초인(超人)들이다. 성경은 인간의 불가능성을 성령의 가능성으로 돌파하는 신학적 원리를 명확히 계시한다.
1) 옛 자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
우리가 배신자를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내 안에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자존심과 옛 사람의 상처'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이미 십자가에서 그 옛 자아가 함께 못 박혀 죽었다고 선언한다.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 움직이려 하면 배신자를 결코 품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사시도록 나의 통치권을 주님께 이양할 때, 내 인격과 감정을 뚫고 '그리스도의 심정'이 흘러나가기 시작한다. 내 힘으로 짜내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아가페가 나를 통과하여 배신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2) 성령의 초자연적 공급과 신성한 성품에의 참여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원수 사랑의 명령을 율법적으로 들이대며 방관하시는 독재자가 아니시다. 그 명령을 행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하늘의 에너지를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폭포수처럼 부어주신다.
• 로마서 5장 5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베드로후서 1장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인간의 이기적 사랑(에로스나 필리아)은 상대방의 배신이라는 환경적 충격 앞에서 가차 없이 깨어지고 변질된다. 그러나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신성한 성품(아가페)은 배신이라는 외부적 조건에 전혀 지배받지 않는 절대적 사랑이다. 구약의 요셉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의 배신 속에서도 복수의 칼을 가는 대신 눈물로 그들을 껴안을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는 감옥과 고난의 세월 속에서 꿈 해몽의 영감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긴밀하게 연결(Connection)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어 성령의 위로를 공급받는 성도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신적 사랑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