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영성에 대한 공공신학적 모색: FWIA 세미나를 중심으로(2)

오피니언·칼럼
칼럼
장지동 기자
zidgilove@cdaily.co.kr
황경철 박사(CCC / 국제복음과공공신학연구소장)

Ⅲ. 개혁파 전통의 일과 소명 이해

황경철 박사.

종교개혁은 중세 가톨릭 성직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성경을 일반 성도의 손에 돌려주었다. 당시까지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 역본’(Biblia Vulgata)이 예배의 표준으로 사용되어 대다수 성도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위클리프는 영어 성경 번역의 선구적 길을 열었고, 루터는 독일어 성경을, 보헤미아 형제단은 체코어 성경을 통해 모국어로 성경을 읽게 도왔다. 그에 못지않은 종교개혁의 또 다른 공헌은 로마 가톨릭이 제도화한 성속의 위계를 허물고, 모든 신자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이웃을 섬기며 만인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일상의 노동에 소명의 의미를 회복한 것이다. 개혁파 내 일과 소명 연구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기에 여기에서는 주요한 특징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1. 일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의 부분이다.

개혁파 전통에서 일은 타락 이후의 형벌이 아니라 창조 질서의 일부이다. 창세기 1~2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온 땅을 다스리고 경작하도록 부름받는다. 타락과 그로 인한 저주는 3장에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창세기 1:28의 ‘문화명령(창조명령)’은 일이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인 인간의 영광스러운 특권이자 거룩한 책무임을 적시한다. 칼빈 역시 가인과 아벨의 노동을 주해하면서 땅을 경작하는 일과 양을 치는 일이 모두 “하나님이 승인하신” 삶의 형태이며, 인간 공동생활에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요점은 단순하다. 일의 존엄은 직종의 위계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대한 응답에서 나온다. 루터도 구두 수선공, 대장장이, 농부의 일도 사제나 주교들처럼 매우 신성하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성속 이분법은 창조신학에서 이미 약화된다.

2. 일은 이웃 사랑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창조신학을 토대로 직업소명론을 도출하였다. 루터는 “소명”의 의미를 수도원과 성직의 특별한 길에만 묶어 두지 않고, 평범한 일상과 직업으로 확장했다. 루터 이전에는 소명에 대한 독일어 “Beruf”가 영적인 소명 즉, 성직자들에게 한정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루터는 고린도전서 7:20에 근거하여 성직자를 포함한 모든 직업적 소명을 의미함을 역설하였다. 칼빈은 소명의 범위와 방향을 공동체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각자가 하나님이 두신 자리와 책임 안에서 살아갈 때, 모든 직무와 노동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고 보았다. 청교도에게서 이 전통은 더 공적이고, 실천적으로 확장된다. 윌리엄 퍼킨스는 소명을 “공동선을 위한 부르심”으로 정의하면서, 직업 수행은 타인의 행복과 유익을 끼쳐야 하며, 가능한 많이, 모든 곳에서 모두를 위한 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리처드 백스터는 직업 선택 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공공선을 증진하는 것이라며, 비록 그 일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지만 타인에게 거의 유익이 되지 못한다면 불행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결국 일은 교회 일과 구분된 하찮은 영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을 따라 제자도가 발휘되는 현장이다.

3. 일은 하나님과 함께 피조계를 다스리는 초대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는 이 소명론을 일반은총의 관점으로 전망했다. 카이퍼의 영역주권은 가정, 교회, 학문, 정치, 경제, 예술 등 각 영역이 고유한 질서와 책임을 가지면서도, 그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 바깥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바빙크의 일반은총론은 구원을 얻게 하는 특별은총과 구별되면서도, 하나님이 사회질서와 문화발전을 보존하시는 보편적 은혜라고 설명한다. 이는 일터를 영적 무관심의 공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으나 동시에 고유한 전문성과 논리를 지닌 공적인 장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개혁파 공공신학은 성도가 사회 각 영역의 고유한 문법을 존중하면서도, 정의·질서·진실·섬김의 방식으로 공공선
을 추구하도록 요청한다.

Ⅳ. FWIA 세미나에 대한 개혁신학적 평가

FWIA는 2014년 김윤희 박사에 의해 Faith and Work Institute Asia로 시작되었고, 이후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일터 사역 단체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 다양한 분야의 기독교인 1만 명 이상과 목회자 1천여 명 이상을 400여 개의 교회와 단체에서 훈련해 왔다. 2026년 현재 FWIA는 공식 사이트에서 “Faith & Work Institute for All Nations”로 소개되고 있다. FWIA 커리큘럼은 일, 돈, 성공, 윤리, 관계, 갈증 해소(술, 경쟁) 등 총 6권의 교재로 구성되는 바, 개혁신학 관점에서 볼 때 어떠한 신학적 특징을 띠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1. 종교개혁의 직업소명론과 만인제사장론에 충실

제1권 ‘일’에서 독일어 “Beruf”의미를 설명하며 하나님은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며,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초한다고 설명한다. 모든 일과 노동에 성과 속의 구별은 없으며, 일은 단순히 밥벌이가 아닌 소명의 시각으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고 촉구한다. 하나님이 이미 창조를 통해 일의 본을 보여 주셨고, 인간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 유익과 발전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FWIA는 “BAM, Business As Mission”을 넘어서 “BIM, Business Is Mission”을 말한다. 즉,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선교와 구제에 헌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버는 행위, 즉 노동과 업무 자체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한다면 분식회계, 이면계약, 뇌물수수와 같은 부정한 방식으로 얻은 소득을 십일조나 선교헌금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을 체불한 채 그 재원으로 자선이나 구제하는 것 역시 기독교적 선행으로 인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비즈니스를 수단으로만 한 선교가 아니라, 비즈니스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인 이웃을 사랑하고, 피조계에 유익을 끼치는 선교 활동이기 때문이다. 한 참석자 J씨는(한약사 2년 차) 자신의 대학 동기들이 모두 전임선교사가 되어서 자신은 그들보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후원만 했었는데, FWIA를 통해서 자신의 일 역시 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소명임을 깨닫고 최선으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2. 창조-타락-구속-완성의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

일과 일터의 고달픈 현실에 대해 FWIA는 타락과 죄의 결과라는 성경적 원리를 분명히 한다. 물론 교회에서 설교나 특강 때 기독교 세계관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다분히 추상적이어서 일반 성도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도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FWIA 1권은 타락에 대한 예시로써 절세(節稅)를 위해 실제와 다른 계약서를 요구하며 편의를 봐주면 조건 없이 몇 년 동안은 거래하겠다는 원청기업의 제안에 고민하는 중소기업 그리스도인 U 사장의 갈등을 소개한다. 또 판매실적 경쟁으로 야근 근무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본사 영업팀 N씨가 승진 기회를 코앞에 두고 대리점 한 군데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모든 책임과 페널티를 대리점이 부담하도록 하고, 본사에 어떤 보고가 올라온다면 불이익을 당할 수있다는 위협을 가해놓고 주일날 승진을 위해 기도하는 사례 등을 나눔 주제로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직장인들에게 매우 실질적으로 사례를 통해 세계관 개념에 접근한다고 할 것이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 개념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직장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사례와 언어로 소그룹 나눔을 진행한다. 이때 자신이 겪은 비슷한 경험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추상적인 기독교 세계관 개념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와닿는 것을 경험한다. FWIA는 현실 속 직장에서 겪는 고단한 삶을 인정하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일하는 방식,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물건을 파는 방식, 경영하는 원칙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창의적 지혜와 믿음의 용기를 발휘하여 하나님의 의도대로 모두가 유익을 얻는 쪽으로 일터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도전한다. 물론 이러한 삶의 궁극적 토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속에 있다. 신자의 선행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새사람을 입은 자가 이미 받은 은혜에 응답하며 맺는 감사의 열매이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6문).

3. 직장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공공신학적 함의

공공신학적으로 볼 때 FWIA의 의의는 네 가지다. 첫째, 일반은총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과 활용을 강조한 점이다. 바빙크는 일반계시는 신자와 비신자가 만날 수 있는 확고한 발판이자 그들과 공통된 토대라고 했다. 개혁신학의 가르침대로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한(정도가 아닌 범위에서) 인간에게 준비된 것은 심판과 저주와 형벌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반은총을 통해 죄악의 관영함을 억제하고, 법과 제도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며,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이성, 인격, 도덕성을 통해 세상을 보존하고 문화를 꽃피우게 하신다. FWIA는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이 고민하는 돈, 성공, 갈증, 경쟁에 문제의 금기시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직장인이 씨름하는 사안임을 인정하며 대화의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소그룹 대화 가운데 진지한 고민과 토론을 통해 맹목적 신앙을 넘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그리고 교재 후반부에서 그 문제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원리를 제시한다.

둘째, 공공신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이중언어’에 적합하게 교재와 모임을 구성한 점이다. 한국교회가 교회 밖으로부터 비판 수용 준비가 얼마나 되었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준비되었다” 15.4%(매우 2.2%+약간 13.2%), “준비되지 않았다” 80.0%(별로 36.7%+전혀 43.3%)로 5명 중 4명은 한국교회가 세상과 소통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FWIA는 답을 정해 놓고 제시하는 ‘답정너’식 접근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먼저 충분히 이야기하도록 토론을 촉진한다. 실제로 2시간 모임 중 강사가 말하는 시간은 30~40분이고, 토론 시간은 60분으로 구성된다. 김민석은 공공신학이 오늘날 다원화된 공론장에서 이해될 수 있도록 이중언어 즉 신앙의 언어와 세상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도록 교회가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셋째, 그렇다고 일반은총과 난상토론에 모임이 표류하도록 방치하지 않고 성경적 원리를 명확히 제시한 점이다. 교재의 매 단원은 1) Opening Talk(직장에서 있을 법한 사례와 그에 대한 경험을 나눔), 2) Biblical Point(그 주제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나눔), 3) FWIA Voice(결론을 2~3문장으로 제시)로 구성된다. 세 부분 중 강의자나 인도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일까? 결론도 아니고, Biblical Point도 아니다. 바로 Opening Talk인데, 이 시간을 통해 참석자들이 그 주제를 자기 경험과 연결함으로써 진지한 고민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신우회 설교나 직장인 성경 공부와의 핵심적 차이점이다. 질문과 쟁점이 참여자의 삶 속에 충분히 내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성경적으로 옳은 답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유용한 정보(information)로만 머물 가능성이 크다. 성경적 답이 실제 직장생활의 관점과 태도를 변혁(transformation)시키기 위해서는,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질문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넷째, 적용은 각자의 몫임을 일관되게 강조함으로써 각자 신앙 성숙도와 처한 환경의 다양성을 존중한 점이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설교자로부터 분명하고 시원한 답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설교자는 신학과 성경의 전문가일 수는 있어도 성도가 출근하는 직장과 업무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질문이라 할지라도 성도 개인마다 가치와 성향이 다르고, 인격·신앙·실력의 성숙도에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끝으로 공공신학이 다루는 많은 문제는 흑백논리나 선과 악이 선명히 대립하는 사안이라기보다, 정당한 가치들이 충돌하는 복합적 쟁점이 많다. 따라서 기계적으로 원칙을 적용하기보다 실천적 지혜와 적용의 자율성이 요구된다. 그래서 소그룹을 진행하는 테이블 리더에게 “리더가 답을 주지 않도록, 설교하거나 가르치지 말고 질문 중심으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도록, 한 사람이 대화를 독점하지 않도록”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소통의 훈련이 자신의 이념에 함몰된 채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일방적 주장만을 반복하는 한국교회 일각의 극단적 정치화에 대한 하나의 해독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공공신학은 무엇이 진리인가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진리를 다원화된 공론장에서 어떠한 언어와 태도로 정중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것인가를 함께 중시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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