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와 자살, 낙태 등 생명윤리 현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국가의 보호 의무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기 위한 ‘인간생명보호법’ 제정 필요성을 모색하는 학술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조배숙 국회의원실이 주최하고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태여연)이 주관한 ‘안락사·자살·낙태 등으로부터 인간생명보호법 제정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1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1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과 생명윤리 및 법학, 의료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인간생명보호법 제정 방향과 생명권 보장 방안을 논의했다.
행사는 개회식과 학술토론회 순으로 진행됐으며, 국민의례와 환영사, 인사말 순으로 이어졌다.
조배숙 의원은 환영사를 통해 인간 생명은 모든 권리의 출발점이자 인간 존엄성과 가치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헌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선언하고 있으며 국가에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부여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명이 온전히 보장될 때 자유와 평등, 행복추구권을 비롯한 기본권이 본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높은 자살률 문제와 낙태 및 안락사 관련 법안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의 발전이 삶의 질을 향상시켰지만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 보호 범위를 둘러싼 새로운 법적·윤리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간생명보호법을 둘러싼 논의가 시대적 과제”라며 “이번 세미나에서 제시되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제언이 인간생명보호법 제정을 위한 실질적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조정훈 의원도 인사말을 통해 “생명 보호를 위한 논리와 자료가 더욱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특히 젊은 세대가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이 중요하다”며, 생명 보호 교육을 강화하는 데 각계의 협력을 요청했다. 조 의원은 자신 역시 생명 보호를 위한 활동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대표는 “인간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인 만큼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생명을 둘러싼 가치가 훼손될 경우 창조 질서 역시 무너지게 된다며 생명 보호를 위한 입법이 적극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베이비박스를 통해 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전했다.
길원평 한동대 석좌교수는 축사를 통해 생명권은 어떤 사회적 논리보다 우선되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은 수단이 될 수 없는 가장 존엄한 가치라며 안락사와 자살, 낙태 등 생명과 관련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 수정 순간부터 자연사까지… “인간생명보호법 필요”
이어진 학술토론회에서는 인간생명보호법 제정 필요성과 생명권 보호 원칙을 중심으로 다양한 발표가 이어졌다.
이상원 교수(전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수정순간부터 심폐사까지’를 주제로 발표하며 “인간생명보호법은 배아살해와 낙태, 안락사 등 무고한 인간 생명을 임의로 종결시키는 행위를 법적으로 통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생명보호법이 수정 순간부터 심폐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인간 생명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이 범주에 속한 생명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며 “또한 생명 보호 논의를 사형제도와 같은 형벌 체계 문제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명진 의사(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의사평론가)는 현대 의료 환경이 유물론과 공리주의라는 사상적 흐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명의 가치가 존재 자체가 아닌 효용성 중심으로 평가되는 상황이 확대되고 있다”며 “생명 경시 풍조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법적·윤리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조건, 육체적 고통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며 “의사들이 양심과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낙태나 의사조력자살 등의 의료행위를 강요받지 않도록 진료 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자살이나 안락사 논의에 앞서 국가가 임종기 환자의 신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지원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며 “수정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연속성을 인정하는 것이 의료윤리의 핵심이다. 국회가 인간생명보호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 생명권과 국가 보호 의무, 법체계 정비 필요성 제기
음선필 홍익대 법학부 교수는 ‘생명권과 국가-인간생명보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음 교수는 “생명권이란 인간의 생명을 절멸로부터 보호하는 권리”라며 “생명권은 국가 권력에 대한 방어권인 동시에 국가에 보호를 요구할 수 있는 보호청구권,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생명권이 국가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 만큼 국가의 보호 의무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간생명보호법이 기존 생명 관련 법률들과 충돌하거나 중복되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설계돼야 한다”며 “특히 생명 존중 문화 조성과 관련해 현행 자살예방법 등과의 관계를 고려한 입법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음 교수는 현행 생명 관련 법체계와 인간생명보호법 제정 필요성, 그리고 법안의 주요 방향 등을 소개하며, 생명권 보호를 위한 기본법 성격의 입법 필요성을 제기했다.
◆ “태아 생명권 보호는 국가 의무”… 낙태 입법 논쟁도 제기
김서현 변호사는 ‘태아의 생명권과 국가의 보호 의무’를 주제로 발표하며 낙태 문제에 대한 헌법적 검토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해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허용은 헌법상 생명권 보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낙태 문제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만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태아의 생명권과 국가의 보호 의무, 민법 체계, 저출산 문제 등 국가 법질서 전반과 연결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학업과 직장 문제, 경제적 어려움, 양육 부담 등은 국가 지원 정책과 제도적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국가가 충분한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헌법상 의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태아의 상속권과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인정하는 현행 민법 체계와 낙태 허용 확대가 충돌할 수 있다”며 “저출산과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 역시 입법 과정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한 임신, 의학적으로 불가피한 경우 등 현행 모자보건법이 인정하는 사유 외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로 허용하는 입법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향후 헌법재판 절차를 통해 2019년 결정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국회가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대신 경제적 사유로 출산을 포기하려는 임산부들을 위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며, 낙태 문제 역시 공동체 전체의 법체계와 생명 보호 원칙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는 박은호 신부와 연취현 변호사가 참여한 지정토론에 이어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은 인간생명보호법 제정 가능성과 생명권 보호를 위한 입법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행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