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정병준)가 2일 오후 온라인 줌(Zoom)을 통해 제44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근대 선교운동 속 신학교육의 포용성과 한국 초기 선교 역사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다뤄지며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이용민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섭외이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안성호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연구교수(Research Fellow) 겸 아시아 기독교사전 편집장이 ‘보스턴 선교사 훈련학교(BMTS): 포용적 신학교육과 동아시아 초기 침례교 교회의 형성’을 주제로 발표했으며 △김일환 서울장신대 객원교수는 ‘아서 웰본(Arthur G. Welbon)의 초기 선교활동(1900-1909); 황해도와 강원도 선교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제했다.
◇ “보스턴 선교사 훈련학교, 기존 엘리트 중심 신학교육의 대안 제시”
안성호 교수는 발표를 통해 북대서양 세계의 전통적 선교 교육이 재정적 배타성과 학문적 엘리트주의, 사회적 계층 구조 속에서 형성돼 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가 여성과 노동계층,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이들의 참여를 제한하며 제도권 신학 교육으로부터 주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당시 신학과 선교 훈련이 경제적 자원과 정규 교육, 문화적 자본을 가진 소수에게 집중됐으며, 이는 교회 내 기존 사회적 위계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며 “이러한 배제적 교육 패러다임은 신학 교육의 접근성을 제한했을 뿐 아니라 다문화·세계적 선교 환경 속에서 요구되는 다양성과 선교 효과성을 저해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흐름과 달리, 아도니람 저드슨 고든(Adoniram Judson Gordon)에 의해 1889년 설립된 보스턴 선교 훈련학교(Boston Missionary Training School, BMTS)는 공정성과 포용성, 선교 지향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신학교육 기관이었다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고든이 선교적 소명과 사역의 효과성이 개인의 재정적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에 의해 제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으며, 모든 신자가 접근 가능한 교육을 통해 영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며 “특히 여성과 이민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계층 등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참여를 적극 장려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했다.
안 교수는 “BMTS의 급진적 포용성은 기존 신학 교육의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동시에 새로운 선교 교육 모델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BMTS가 당시 명문 신학교와 교단 선교본부 중심의 제도적 구조와 달리 지리적·신학적·구조적으로 의도된 주변성 속에서 운영됐다”며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위치성이 기존 교회와 사역자 형성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줬으며, 세계 선교와 교회 형성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BMTS의 영향력이 단순히 학생 수나 기관의 지속 기간 같은 제도적 지표로 설명될 수 없다”며 “BMTS의 진정한 유산은 교회적 상상력과 선교적 패러다임에 있으며, 재정적 접근성과 성별·민족적 경계를 넘어선 포용성이 성령의 부르심을 사회적 위계보다 우선시하는 신학적 통찰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어 “BMTS가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민자, 노동자 계층 등을 단순한 교육 대상이 아닌 선교의 주체로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 “한국 초기 침례교 형성과 동아시아 선교에도 영향”
안성호 교수는 “BMTS의 글로벌 선교 영향력이 동아시아, 특히 한국 선교 역사 속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며 “BMTS가 한국 초기 침례교 형성에 기여한 선교사들을 파송했으며, 원산 성경학교와의 연속성 속에서 그 비전이 한국과 만주, 시베리아까지 확장됐다”고 했다.
또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선교훈련기관이라도 분명한 신학적 비전과 선교 목적을 지닐 경우 세대와 지역을 넘어 지속적인 영향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BMTS 사례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BMTS가 복음주의 신학교육이 아직 유동적이고 실험적이던 시기의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는 “고든이 무디(D. L. Moody), 헨리 그래턴 기네스(Henry Grattan Guinness) 등과 형성한 네트워크를 통해 BMTS가 부흥운동과 선교 혁신이 교차하던 대서양 세계 속에 위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BMTS는 침례교적 교회론과 복음주의 열정, 사회적 자비, 소외된 이들에 대한 민감성을 결합한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했다”며 “이러한 요소들이 단순한 이념적 선언이 아니라 클래런던 침례교회와 BMTS 사역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된 현실이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고든 사후 BMTS가 고든칼리지와 고든콘웰신학대학원으로 발전하며 제도화된 신학교육 체계 안으로 편입됐다”며 “이러한 변화가 기관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초기 BMTS가 가졌던 낮은 진입 장벽과 급진적 포용성, 성령 중심의 선교사 파송 정신은 점차 학문적 전문화와 제도적 안정성 속에 흡수됐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를 신학교육 제도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긴장이라고 평가하면서 “BMTS 사례가 오늘날 엘리트 중심 신학과 선교 교육 구조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 “아서 웰본 초기 선교활동, 잊혀진 한국 선교 역사 복원 필요”
이어 발표한 김일환 교수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아서 가너 웰본(Arthur Garner Welbon, 오월번)의 초기 선교 활동을 집중 조명했다.
김 교수는 “웰본이 경북 안동 지역 개척 선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의 선교 활동은 안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며 “웰본은 서울선교지부와 평양선교지부, 대구선교지부 등에서도 활동했으며, 특히 1900년 한국 입국 이후 1909년 안동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약 9년 동안 황해도와 강원도 지역 순회 선교사로 활동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웰본이 강원도 철원과 원주 등지에서 진행한 선교 활동의 결실이 이후 장로교와 감리교 간 선교구역 분할협정에 따라 감리교 측에 이양됐고, 해당 지역 교회 성장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만약 웰본 선교사가 강원도 지역에서 계속 활동했다면 미국 북장로회 원주선교지부를 설립하고 원주와 강릉 지역을 관할하는 선교사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웰본이 활동했던 지역 상당수가 이후 감리교 선교지로 변경되면서, 안동 지역 개척 선교사라는 이미지에 비해 그의 초기 선교 활동은 상대적으로 잊혀졌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웰본은 1900년 10월 11일 33세의 나이로 한국에 입국한 뒤 안동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홍문동교회 분규 수습과 인성부재 예배처 목회, 황해도 배천·연안·평산 지역과 강원도 철원 지역 순회 선교, 원주선교지부 설립 추진 등의 사역을 펼쳤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순회 선교구역 대부분은 이후 선교구역 분할협정을 통해 미국 감리회와 남감리회로 이양됐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웰본의 초기 선교를 연구하며 “그의 선교는 무엇을 남겼는가”, “9년간의 활동을 살펴보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웰본의 초기 선교 활동이 미국 북장로회 한국선교회나 서울선교지부 역사 전체에서는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남긴 선교의 열매가 감리교로 이양된 지역 교회 성장의 토대가 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웰본 연구는 안동 지역 중심으로 알려진 선교사 개인사의 빈틈을 보완하고, 28년에 걸친 그의 한국 선교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선교구역 분할협정 과정 속에서 교단 변경과 함께 잊혀진 초기 선교 역사를 복원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교단 간 이양 지역의 초기 선교 역사는 교단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당대와 후대 모두의 관심 밖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며 “웰본의 초기 선교 활동 연구가 교단 간 선교구역 이양 지역의 초기 선교 역사 연구 필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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