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사역의 남용 이후, 교회는 어떻게 ‘예언의 정직성’을 회복할 것인가

완다 알거.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완다 알거의 기고글인 ‘은사주의 교회의 예언 사역에 영적 정직성을 회복하는 방법’(How to restore spiritual integrity to Charismatic church's prophetic voice)를 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완다는 35년 넘게 예배 인도자, 교사, 저자, 치유·상담 사역자, 강연자로 섬겨 왔다. 아홉 권의 책을 집필한 저자로서,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통해 성숙해 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은사주의 교회들이 예언 사역의 남용 문제로 지속적인 반성과 점검의 시간을 겪고 있는 지금, 교회의 예언적 목소리를 성경적 정직성 위에 다시 세우는 일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준 다음의 권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린도전서 14:29).

먼저, 사람의 인격을 시험하는 것과 예언적 계시를 시험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한 인격을 가진 사람도 예언의 말을 “빗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6:21-23). 반대로,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맞는” 말을 할 수 있다(사무엘상 19:23-24, 요한복음 11:50). 그러므로 꿈이든, 환상이든, 어떤 예언적 말이든 그것을 판단할 때에는 한 가지 방식의 분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격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을 실제로 아는 사람들만이 올바르게 할 수 있다. 이런 평가는 보통 지역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한 개인이나 지도자가 가정과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정직함의 열매를 보여 줄 때 비로소 인격에 대한 진정한 검증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개인의 삶과 말, 결혼과 가정의 건강함, 타인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과 동기의 실제적인 증거가 포함된다. 또한 이곳에서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검증되고, 주어진 은사가 실제로 사용되며, 그것이 지속적인 열매를 맺는지 시험된다. 결국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열매를 꾸준히 지켜볼 수 있는 가까운 공동체만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과 실제적인 은사를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당사자가 스스로 이러한 검증을 요청하는 것이다. 마음이 겸손하고 교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 주신다(이사야 66:2).

예언적 계시, 곧 꿈이나 환상, 또는 어떤 영적인 감동 역시 반드시 시험되어야 한다(데살로니가전서 5:19-21). 이런 훈련 역시 대부분 지역 교회 안에서 시작된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다루는 일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어떤 예언적 계시를 해석하고 그것을 공동체에 격려와 힘이 되도록 적용하려면 반드시 성경적 기준이 필요하다. 예언의 은사를 다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구하고 함께 분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무게는 사실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게 있기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사람에게 있다.

그렇다면 범위가 더 큰 예언적 계시, 즉 더 넓은 교회나 국가를 향해 주어졌다고 주장되는 메시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에는 추가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지역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부담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나 국가적 문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피드백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자신의 교회를 돌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역 지도자가 국가나 전 세계 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적절히 검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왕들과 총독들과 통치자들 앞에서 말할 정도로 국가적 수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사도행전 24:10-21, 25:8-12, 26장). 그는 그러한 사도적 권위를 행사하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베소서 4장 7절은 각 사람이 자신의 부르심에 따라 일정한 “은혜의 분량”을 받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지역 교회를 이끌도록 부름 받고, 어떤 사람은 더 넓은 지역을 이끌도록 부름 받는다. 바울은 이러한 사역의 경계를 강조하며, 신자들이 그것을 인식하고 올바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권면했다(로마서 12:3).

따라서 국가적 수준의 예언적 메시지는 같은 은혜의 분량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검증된다. 지역 교회 안에서 예언의 목소리들이 함께 협력하여 분별해야 하듯이(고린도전서 14:29-33), 국가적 수준의 예언자들도 서로 협력하여 메시지를 분별해야 한다. 이는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소셜미디어 사역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예언 사역과 은사주의 사역에서 가장 크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국가적 예언자나 소셜미디어 사역자들이 “주님의 말씀”이라 주장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표하는 상황에서, 그 수준에 걸맞은 예언적 책임성과 검증 구조는 매우 부족했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몇몇 “예언적 위원회”나 유튜브 채널들이 이러한 메시지를 시험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감독 구조가 지역 교회 차원의 인격 검증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국가적 수준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발표되는 예언을 올바르게 시험하려면 메시지뿐 아니라 메신저 역시 분별해야 한다. 공개된 이미지나 대중적 평판은 얼마든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사람을 속일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만 보고 그 사람의 동기를 판단하려는 것은 지혜롭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가까운 공동체 안에서 이미 신뢰할 만한 인격을 입증했다고 해도, 그가 말하는 예언적 메시지 역시 여전히 성경적 기준에 따라 분별되어야 한다.

최근 드러난 여러 예언 사역의 남용과 비윤리적 행위들은 우리가 예언의 메신저와 메시지 모두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문제는 단순히 거짓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더 발견하기 어렵고 더 교묘한 위험은 혼합이다. 성령과 육체가 섞여 있는 상태, 진리와 오류가 함께 섞여 있는 메시지, 어떤 좋은 열매가 조금 있다는 이유로 나쁜 열매를 허용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가 활발히 나타나는 교회가 직면한 실제적인 위험은 거짓 선지자만이 아니라,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닌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로마서 10:2-3)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가 예언의 은사에 정직성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어떤 예언자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높은 기준으로 삼는 의로운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교회가 이렇게까지 왜곡된 상태에 이르기까지 방치했던 일에 대해 함께 회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참된 예언의 영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다시 말과 삶 모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돌아가야 한다(요한계시록 19:10).

#크리스천포스트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