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 반도체 핵심 인력을 겨냥해 공격적인 채용에 나서면서, 반도체 인재 확보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공정 분야 일부 전문가에 국한됐던 이직 수요가 인공지능(AI) 칩 설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한국 반도체 인력을 둘러싼 인재 전쟁이 전방위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테슬라코리아의 AI 칩 설계, 제조(팹),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을 공개 모집한다고 밝혔다. 채용 공고에 태극기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한국 인력을 특정해 언급한 점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차세대 자율주행 칩 개발과 초대형 생산 시설 ‘테라팹’ 구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반도체 실무 인력을 전략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에 이어 글로벌 주요 반도체·IT 기업들도 한국 반도체 인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마이크론은 대만 타이중 지역 팹에서 근무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엔지니어 채용을 추진했다. 특히 HBM 핵심 인력을 대상으로 기존 연봉의 두 배 이상과 약 3억 원 수준의 사이닝 보너스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국내 주요 대학에서 ‘당일 채용’을 조건으로 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AI칩·HBM 중심 확산…연간 총보상 5억 원대 사례 등장
엔비디아와 애플 역시 AI 칩 개발과 HBM 최적화 경쟁에 대응해 실리콘밸리 본사 근무 기회와 수억 원대 제한조건부주식(RSU)을 제안하며 한국 반도체 인력 영입전에 참여한 바 있다. 숙련된 엔지니어 한 명을 확보하기 위해 연간 총보상 규모가 5억 원을 넘는 사례도 업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반도체 인력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설계부터 양산 공정 안착까지 전 과정을 경험한 국내 전문가들의 숙련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장 중심의 실무 경험과 축적된 기술력이 국제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최근 인재 확보 경쟁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반도체 전반으로 확대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엔지니어와 연구 인력을 가리지 않고 학사·석사·박사 등 학위와 무관하게 전 단계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박사급 인력의 경우 외국계 기업이 연 4억~5억 원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는 사례도 있다”며 “현지 체류비와 세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직 여부를 판단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고강도 보상책으로 이탈 방지
글로벌 빅테크의 공세에 맞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보상 체계를 강화하며 대응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의 실적 회복을 반영해 연봉의 47%에 해당하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을 확정했다. 2024년 1인 평균 급여가 약 1억3000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차·부장의 경우 약 6100만 원 수준의 추가 보상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핵심 인력에게 수억 원대 장기성과인센티브(LTI)를 별도로 지급해 인재 이탈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HBM 시장 선점 성과를 바탕으로 기본급의 2964%에 달하는 초과이익분배금(PS)을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 생산성격려금(PI)까지 더해질 경우 일부 직원의 총보상 규모는 3억 원대에 근접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안 전무는 “국내 기업들이 연봉과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것은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는 보상 체계를 갖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감한 보상과 신속한 투자가 병행돼야 글로벌 인재 경쟁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반도체 기업 간 보상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핵심 인력을 둘러싼 인재 확보 경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