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가리켜 ‘총체적 위기’라고 말합니다. 국론 분열과 양극화 현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현실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육체적이고 외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비신앙적인 태도 등이 우리 사회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은 가정에까지 침투하여 가정과 공동체가 붕괴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26세에서 35세 사이의 성인들에게 “가정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가?”라고 물었을 때, 응답자의 85%가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성들은 ‘자기 발견’이라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경향이 모성애마저 잠식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의 때임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부패가 극에 달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되자 심판을 내리기로 하십니다(20절). 하나님께서 얼마나 엄중한 형벌을 내리셨는지는 창세기 19장 24~25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처럼 쏟아져 성과 온 들, 그 안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나는 식물까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현장 또한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합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고 바른 신앙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당시 소돔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걱정되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23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호소합니다.
여기서 “가까이 나아가다”는 히브리어로 ‘나가쉬(Nagash)’라고 합니다. 이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거나 다가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 이삭 앞으로 가까이 나아갔을 때(창 27:27) 사용된 단어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타락한 도시 소돔과 함께 조카 롯이 멸망당하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이 가족 구원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고백했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아내 캐서린 부스도 “오 하나님, 저는 가족 없이 홀로 주님 앞에 서기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독일 전쟁 당시, 적군에게 포위된 아군이 본부에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전선이 끊겨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전선을 이으려 노력했지만 선이 조금 모자랐습니다. 그때 한 통신병이 양쪽 전선의 피복을 벗겨 자신의 몸으로 선을 연결했습니다. 그 덕분에 연락이 닿아 부대원들은 무사히 구조되었지만, 통신병은 감전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중보기도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열 명이 없어 성이 멸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의인 50명부터 시작해 45명, 40명, 30명, 20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명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겠느냐고 거듭 간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철저히 인정하는 겸손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간절히 매달렸습니다(27절). 아브라함의 기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사실 아브라함 자신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4장 3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의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이신칭의).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의인을 찾으십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에 아브라함 같은 의인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를 보시고 소돔의 죄를 사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신앙적으로 온전치 못한 롯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셔서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창 19:29). 아무리 죄악이 관영한 도성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진정한 의인이 있다면 하나님은 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의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이 한심하고 답답해 보일 때가 있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의인 열 명’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위대한 정치인이나 성공한 사업가, 부유한 재산가나 똑똑한 지식인이 아닙니다.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의인 열 명’뿐입니다.
에스겔 22장 30절은 말씀합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성의 무너진 곳을 기도로 막아서는 그 한 사람, 그 열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의롭다 함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길이요 가정을 구하는 길이며, 동시에 나라를 세우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의인이 되어, 아름다운 이 나라를 기도로 세워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