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란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주해를 통해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도출해야 한다. 주해는 철저하게 현장 중심의 실천적 과정이다. 다시 말해, 주해는 본문을 해석해서 설교하거나 묵상하는 등 우리의 사역과 일상의 현장에 접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본문을 정확하고도 적절한 눈높이로 번역하면, 더불어 경험하게 되는 또 다른 유익 한 가지가 있다. 본문이 우리 눈앞에 매우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본문이 내 눈앞에서 춤을 춘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처음에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던 본문이 나를 향해 한걸음 껑충 뛰어 가까이 다가왔기에, 그 본문의 메시지가 나의 머리와 가슴에 들어오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본문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이미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희석 - 성경으로 설교하기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에도 늘 고난과 아픔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거친 광야를 다 지나간 후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천국에 들어가 위로를 받고, 그에 합당한 상을 받게 됩니다. 광야는 끝나고 성도들은 영원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사모하는 만큼, 오늘의 광야를 기쁘게 지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인생에 주어진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시간이 우리를 정금 같은 믿음의 소유자로 연단하여 마침내 바라고 바라던 천국에 이르게 합니다.
헤이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야
오늘날 교회는 ‘마음이 잘 맞는 사람끼리의 사적 친밀감’을 지양하고, 고대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했고 예수께서 온전히 성취하신 진정한 ‘우정’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함께하는 활동”으로,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진지하게 의식하고, 필요하다면 자기희생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며, 의식적으로 윤리적 행동을 택하는 공적 관계입니다. 교회의 우정은 헬레니즘 세계의 ‘주고받음’ 원칙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갚을 능력이 없는 자를 친구로 대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우정입니다. 무엇보다 이 우정의 기초는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친구라 불러 주신 예수의 급진적인 은혜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거룩한 우정을 세상 속에서 다시 살아 내도록 부름받은 친구들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동사 피스튜오(πιστεύω)의 분사형을 써서 “그 신뢰하고 있는/순종하고 있는 사람들”(οἱπιστεύοντες)이라 부릅니다. 헬라어 현재 분사는 진행되는 상황을 표현합니다. 즉 피스티스는 과거의 결단이나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 내에서의 실천을 뜻하는 것이지요. 단순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것을 넘어, 그 ‘관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신뢰와 충성’을 말합니다. 믿음은 삶의 방식입니다. 타인이 관찰하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김선용 - 헬라어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