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최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교회는 인간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우리는 인간의 모든 고통을 죄의 결과나 인과응보로 보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며 “고통은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구조적, 실존적 차원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교회는 심한 고통과 상실을 경험하는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과 취약 계층의 고통을 인과응보나 영적으로 해석하려는 유혹에 쉽사리 넘어간다. 제자들도 그랬다”고 덧붙였다.
그는 “관습적 사고의 틀에 갇혀 제자들도 유대인도 보지 못했지만, 성경은 이미 형통한 악인이 있고 고난 받는 의인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자신 안에 깊이 자리 잡은 편견을 버리는 일과 맞닿아 있다. 예수님은 왜곡된 생각과 싸우며 많은 조롱과 비난을 받으셨고, 우리에게 건강한 신앙은 왜곡된 생각과 편견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힘쓰며 기도하는 삶임을 몸소 보여주셨다”고 했다.
이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며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가진 신앙만이 옳다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긍휼을 잃어버리고 정죄가 일상이 된 사회, 그런 사람들과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오셨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긍휼의 마음을 심고, 긍휼로 세워지는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에서 유리하며 방황하는 사람들, 곧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죄로 인해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시며 민망히 여기셨다”며 “‘민망히 여기셨다’는 이 말은 ‘긍휼히 여기셨다’는 뜻이다. 긍휼(compassion)은 하나님의 자궁이, 의역하면 하나님의 창자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과 같은 긍휼의 마음은 가난한 사람들을 단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넘어, 미안함과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우리에게는 특별히 이러한 긍휼로 마주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불치의 고통에 놓인 이들”이라며 “오늘날 교회는 급성 고통과 만성 고통에는 비교적 민감하다.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교회는 방문하고 기도하며 돌본다. 그러나 한 종류의 고통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바로 불치의 고통”이라고 했다.
이어 “모든 사람은 살아가며 세 가지 고통, 곧 급성 고통과 만성 고통과 불치의 고통을 경험한다. 급성 고통은 상처나 수술, 질병과 관련되는 고통으로 대개 일정 기간 안에 회복된다”며 “만성 고통은 장기간 지속되며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불치의 고통은 늙어감과 죽음에 직면하면서 경험하는 고통이다. 이 고통은 특히 노인들에게 가장 오래 머무는 손님과도 같은 고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는 노인들이 겪는 불치의 고통에 충분한 관심을 두지 못한다. 급성 고통과 만성 고통은 외관으로 바로 인식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돌봄의 대상이 된다”며 “하지만 불치의 고통, 곧 아무리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도 늙어감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보편적인 고통에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제 교회는 노인들의 고통을 더 세밀하고 깊이 이해하고 돌볼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하고 돌볼 때 비로소 성숙할 수 있다는 진리 앞에서, 이제 교회는 노인의 고통과 함께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