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존 카펜터 목사의 기고글인 ‘성경은 예배에서 성상(아이콘)을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종교 미술과 종교적 성상의 구분’(The Bible forbids using icons in worship: Religious art vs. religious icon)을 2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존 카펜터 목사는 버지니아주 댄빌에 위치한 커버넌트 개혁침례교회(Covenant Reformed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저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몇 년 사이, 신학자·라디오 진행자·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를 포함한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동방정교회로 개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바이블 앤서 맨’으로 알려진 행크 하나그라프(Hank Hanegraaff), 로드 드레허(Rod Dreher), ‘패스터 벤(Pastor Ben)’, ‘유대인을 위한 예수(Jews for Jesus)’ 공동설립자 제임스 번스타인(James Bernstein) 등이 그 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동방정교회가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변함없이 보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성상을 사용하는 신자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경’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제2계명을 제1계명 뒤에 숨기듯 계명 번호를 다시 매기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행하는 것은 제2계명이 정확히 금지하는 행위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의 명칭을 바꾸고 그것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간음을 ‘사랑 만들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정당해지는 것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다. 제2계명의 핵심 금지는 이미지에 대한 태도나 그 이미지가 무엇을 묘사하는지(그리스도인지, 성인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여기서 ‘섬기다’는 표현은 예배 행위를 수행하는 것을 시사하다.
이 때문에 예배(latira)와 단순한 공경(dulia)을 구분하는 복잡한 신학적 논쟁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 계명은 이미지의 특정한 사용 자체를 금지한다. 곧 기도나 숭배의 초점으로 삼거나, 그 앞에 절하거나, 종교적 헌신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다. 이미지가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될 때, 그것은 곧 성상(icon)이 되며, 제2계명은 이를 명백히 금지한다.
예술은 성상(아이콘)이 아니다
종교 예술(장식, 스테인드글라스 등)과 종교적 성상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동방정교회 신학자들 스스로도 성상을 그 전례적 기능으로 정의한다. “성상의 목적은 전례적이다.” 성상은 단순히 예배 공간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예배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북미 안티오키아 동방정교회 대교구는 성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상의 주된 목적은 예배를 돕는 데 있다.” 정의상 성상은 종교적 헌신에 사용되는 이미지다.
이 구분은 성상 옹호자들이 구약에서 허용된 이미지들, 예컨대 언약궤 위의 그룹 천사들이나 모세가 만든 놋뱀(민수기 21장)을 언급할 때 결정적이다. 이들은 상징적 이미지이거나 장식이었지만, 결코 예배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룹 천사 앞에 절한 적은 없었고, 놋뱀은 예배의 대상이 되는 순간 히스기야 왕에 의해 파괴되었다(열왕기하 18:4). 따라서 카타콤이나 초기 교회 건물에서 초기 기독교 미술이 발견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초기 기독교 성상 사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감상용 예술’과 ‘공경의 대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는 동일하지 않다.
초대교회의 일치된 증언
초기 4세기 동안의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기독교 저술가들 사이에 성상에 대한 일관되고도 보편적인 반대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무상주의(aniconism)’로 알려진 입장이다.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모든 장소의 이미지를 반대하는 엄격한 무상주의부터, 예배에서의 이미지 사용만을 반대하는 완화된 무상주의까지 스펙트럼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신앙적 헌신에서 이미지를 허용하는 선을 넘지는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예술 작품은 거룩하거나 신적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예술가들이 교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이미지 제작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모든 ‘형상’을 금지된 것으로 선언했다. 락탄티우스는 “이미지가 있는 곳에는 종교가 없다”고 유명하게 적었다. 시카의 아르노비우스는 이교도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어떤 신의 조각상이나 이미지도 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경죄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오리겐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 모든 이미지와 조각상을 거부했다”고 선언했다.
엘비라 공의회(약 서기 300–314년)는 “예배의 대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교회 안에 그림을 두지 말라”고 규정했다. 이는 당시 일반적 관행인 성상이 되지 않도록 예배 공간에서 이미지를 배제했다는 사실을 문서화한 것이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그리스도의 초상을 요청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누이 콘스탄티아를 제2계명을 들어 꾸짖었다. 그는 “하늘 위나 땅 아래 어떤 것의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읽지 못했는가?”라고 반문하며, “우리가 우상숭배자들처럼 하나님을 이미지로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와 바울의 초상으로 주장되는 이미지들을 몰수했다고 밝혔다.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는 팔레스타인의 한 교회에 들어갔다가 그리스도나 성인의 이미지가 그려진 휘장을 보고 즉시 찢어 버린 뒤, 그것을 가난한 이를 매장하는 데 사용하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을 편지로 남겼다. 그는 그러한 이미지가 “우리 종교에 반한다”고 말했다.
성상은 언제 등장했는가
기독교 최초 5세기 동안, 예배에서 이미지 사용을 승인한 기독교인의 흔적은 단 한 명도 발견되지 않는다. 소수 파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성상 공경은 후대에 등장한 완전한 신종 관행이었고, 8세기에 이르러 이교적 요소가 교회 안으로 유입되면서 격렬하고 분열적인 논쟁을 촉발했다.
성상 사용을 의무화한 니케아 제2공의회(787년)는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후에 열렸다. 황후 이레네는 성상을 둘러싼 문제로 남편과 불화했던 인물로, 자신이 원하는 결론이 나오도록 공의회를 사실상 조작했다. 그 결과, 앞선 교부들이 공유했던 보편적 관행은 사실상 저주(아나테마)의 대상이 되었다. 이 공의회가 옹호한 성상의 양식과 사용은, 역사학자 헨리 채드윅이 지적했듯이, 제우스나 숭배되던 모신(母神) 이미지에서 차용된 이교적 전통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결론은 분명하다. 초대교회는 성상을 엄격히 금지했다. 성상은 사도적 전통의 일부가 아니며, 훗날 도입된 혁신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