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교회, 두려움의 고립을 넘어 사명의 참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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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샤라프의 기고글인 ‘중동 지역에서 교회가 직면한 고립과 참여 사이의 긴장’(The tension between isolation and involvement for the Church in the Middle East)을 2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이집트 출신인 샤라프(Sharaf)는 아랍 침례신학대학원(ABTS)에서 신학 학사(BTh)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같은 학교에서 신학 석사(Master’s in Theology)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사역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역자 과정 수료증(Certificate in Ministry) 프로그램의 교육 과정을 지원하고, 신학대학 학사 과정 내에서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특히 중동 교회에 속한 이들에게 이 작업은 더욱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온다. 교회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역할과 책임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수록, 그 무게는 더욱 커진다.

이러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사회와 보다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향으로 변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실망감 또한 커진다. 이 같은 갈등은 진실한 신앙,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진정한 사랑, 그리고 교회의 사역을 향한 열정과 결합될 때 더욱 심화된다.

이 글에 담긴 생각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재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확신, 그리고 교회의 현재 현실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온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필자는 교회나 그에 소속된 기관 안에 있을 때마다, 교회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자신을 둘러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나로 하여금 깊은 성찰에 이르게 했고, 뒤에서 그 고립의 몇 가지 양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일부 교회들은 자신들의 사명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놓여 있으며, 고립과 참여 사이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이 갈등의 대가는 종종 교회 구성원들이 떠안는다. 교인들은 교회의 입장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기보다는, 지도자들에 의해 ‘그것이 최선’이라는 전제 아래 선의로 받아들이도록 인도되는 경우가 많다.

비참한 도피의 시도

때때로 우리는 일부 교회들이 여러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세상을 절대적인 악으로 간주하고, 그 안에 어떤 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인식이며, 또 하나는 낯선 정체성 속으로 흡수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도자들이 주변에 확산되는 악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해 점점 더 예민해질수록, 그들은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철수를 선택한다. 이러한 경향은 비기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인식과 결합되며, 두려움이 주요한 정당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 태도가 지속되면서 교회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 결과 사회를 향한 빛과 소금, 그리고 복의 통로라는 사명을 상실해 왔다. 교회는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 곧 변화시키고, 제자를 삼으며, 복음을 선포하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빛을 세상 앞에 숨긴 결과, 교회의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그 의지도 쇠퇴했다.

성경은 교회가 분별력 있고 신중하게 세상과 관계 맺을 것을 요청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교회를 위해 드리신 기도의 의미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15).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고립은 보호가 아니라 사명의 상실이다.

고립의 여러 모습들

중동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고립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성도들의 정체성이 주변 사회 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는 강한 시도다. 그 결과 교회들은 교회 울타리 안에 카페테리아, 클럽, 스포츠 시설, 사적 모임 등을 갖춘 자급자족적 세계를 만들어 왔다. 이로 인해 한 세대의 아이들은 사회의 다양성과 거의 접촉하지 않는 폐쇄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좁은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가정 역시 이러한 경향을 강화하는 데 일조해 왔다. 많은 가정은 왜곡된 안전감 속에서 주변 세상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자녀를 키웠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서로 가까이 거주하며 형성한 세습적 주거 집단은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깊은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

이러한 내향적 태도는 비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의 결핍으로도 이어진다. 많은 젊은이들은 매일 접촉하는 이웃의 문화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며, 이는 지적·사회적 고립을 더욱 심화시킨다.

필자는 교회 밖의 세상이 이상적이거나 악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사상적 지배에 굴복하도록 부름받은 존재도 아니다. 신자의 의식은 인간 사회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본성에 대한 인식에 의해 형성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할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세상에 살지만, 영적 소속은 하늘 본향에 있다(요 15:19). 우리는 이 땅에서 사명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그 길에는 환난과 박해가 따를 것임을 주님은 약속하셨다(요 16:33). 그럼에도 우리의 소망과 확신은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 있으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평안과 소망으로 증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고립에 대한 철학적 성찰

교회에서 말하는 고립과 참여는 인간적·철학적 차원에서도 정의될 수 있다. 고립과 소외의 상태는 역사 전반에 걸쳐 인간이 경험해 온 실존적 현실이다. 특히 실존주의 전통에 속한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깊이 다루어 왔다. 그러므로 ‘고립’과 ‘참여’라는 개념의 다양한 사상적 차원을 분별하기 위해 신학적 성찰 안에 철학적 관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철학과 신학은 언제나 교차해 왔다.

니체는 고립을 사회의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방식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 고독이여, 너는 나의 조국이다… 나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너에게 돌아온다.” 그는 사회의 사상적 지배에 저항하라고 촉구하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고독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베르댜예프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기 부정으로 보았다. 그는 자아의 실현과 존재의 의미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관계 거부는 도덕적 자살과 같다고 보았다.

그는 고립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사회와의 완전한 동화: 이 유형은 갈등 없이 사회에 완전히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독창성과 분별력이 결여된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정체성을 잃은 채 세상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되어 살아간다. 성경은 이를 경고한다(고후 6:14–18).

둘째, 감정적 결합 없는 공존: 사회 안에 존재하지만 진정한 연대나 사랑이 없는 상태로,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유사하다(마 23장).

셋째, 반항 없는 내적 고립: 사회와 타협하며 살아가지만 내면의 분열을 안고 사는 유형이다. 성경은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마음의 새로움을 촉구한다(롬 12:2).

넷째, 고립과 참여의 이중성: 선지자와 개혁자의 삶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와 긴장 속에 살지만, 그 변화를 위해 깊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선지자의 길이 바로 이것이다(요 15:18).

성전: 만남의 공간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은 단순한 분노의 행위가 아니다. 이방인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상업화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권리가 박탈된 데 대한 항의였다. 오늘날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그렇다면 우리의 ‘성전’ 안에 타자를 위한 공간은 남아 있는가? 고립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겠는가?

결론과 제언

교회는 사회와의 과도한 동일시로 정체성을 잃어서도 안 되며, 고립으로 인해 증언을 약화시켜서도 안 된다. 교회는 분별 있는 참여로 부름받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실천을 제안한다.

교회는 성경적 원칙을 지키는 공동체를 세우되, 교회 밖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정의와 긍휼, 사회적 책임에 적극 참여하되, 기독교적 가치를 견지해야 한다. 비신자와의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며, 타협 없는 증언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태복음 5:13) 교회가 이 균형을 지킬 때, 세상 속에서 잃지 않는 증언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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