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급진화, 여성, 그리고 신앙의 붕괴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항상 여성들인가?’(Is it always the women?) 2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어본 독자라면, 당과 전지전능한 지도자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초국가 ‘오세아니아’를 기억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당은 역사를 통제하고, 언어를 왜곡하며(뉴스피크), 사고 자체를 관리한다(이중사고). 특히 당의 노선을 가장 열성적으로 추종하며 집행자 역할을 하는 이들에 대해 오웰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항상 여성들,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당의 가장 편협한 신봉자들이었고, 구호를 삼키는 자들이었으며, 아마추어 첩자이자 비정통성을 냄새 맡아 찾아내는 자들이었다.” ‘당의 여성들’, ‘아마추어 첩자’, ‘이단 색출자’라는 표현이 오늘날 뉴스에서 접하는 장면들과 겹쳐 보이지 않는가.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는 급진 좌파 활동을 보면, 오웰을 예언자라 불러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좌파 성향 여성들이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법 집행 현장을 방해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풍자 매체 바빌론 비는 미네소타주의 공식 주(州) 조류가 ‘비명을 지르는 레즈비언’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고, 방송인 아담 캐롤라는 “여성들이 무기화됐다”고 말했다.

물론 좌파 남성들 역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언론 보도를 보면 유독 Y염색체가 없는 인물들이 더 자주 조명된다. 최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는 제니퍼 크루즈라는 여성이 ICE 요원들과 함께 근무하던 주 경찰관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와 관련해 플로리다 법무장관 제임스 어트마이어는 “하지만 미네소타와 달리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늘은 아니다, 제니퍼”라고 밝혔다.

SNS에서 ICE 요원들의 신상을 털거나,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브라이언 톰슨 살해 혐의를 받는 루이지 맨지오네를 숭배하는 행태까지 포함해 보면, 급진 좌파 여성들은 관용이 아니라 지배를 원하며, 오늘날 ‘당’의 활동 중심에 서 있으려는 모습으로 비친다. 이 모든 것이 과장일까, 아니면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쇠락하는 국가의 징후

급진 좌파 정치 활동에서 여성들의 비중이 커지는 현상이, 전반적인 종교 신념의 쇠퇴, 특히 여성들의 신앙 이탈과 맞물려 나타나는 것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현재 Z세대의 3분의 1 이상은 종교가 없다고 답했고, 약 60%는 성장 과정에서 종교 예배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여성과 교회의 관계를 보면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바나(Barna)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남성의 교회 출석률이 여성보다 유의미하게 높아지며 수십 년간 이어진 추세가 뒤집혔다. 2025년 성별 격차는 역대 최대치로, 남성은 43%, 여성은 36%다. 모든 세대에서 여성의 주간 교회 출석률이 남성보다 낮으며, 특히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바나는 여성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에 대해 “전통적이고 위계적인 교회 구조와, 정치적으로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 사이에 커지는 괴리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사상이 프랑스혁명의 구호인 ‘마지막 왕이 마지막 사제의 창자로 목 졸려 죽을 때까지 자유는 오지 않는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종교를 밀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특히 기독교가 여성을 억압한다는 왜곡된 이미지와 충돌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는 왜곡이다. 성경이 말하는 여성에 대한 교리는 여성을 고양한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이 본질에서 동일하며(창 1:27, 하나님의 형상), 생명의 가치에서도 동일하고(출 21장), 구속의 지위에서도 동일하며(갈 3:28), 영적 은사에서도 동일하고(고전 12장), 복음 역사에서의 가시성 역시 분명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이들은 여성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남녀의 차이는 가치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다.

가치의 차별을 찾으려면 기독교가 아니라 이슬람과 같은 종교를 봐야 한다. 이슬람 경전에는 “남자는 여자 위에 서 있다… 복종하지 않을까 두려운 여인들은 훈계하고 침상에서 분리하며 매질하라”(수라 4:34)는 구절이 있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 여성의 감소는 영적 차원에서 심각한 경고 신호다. 성경은 여성이 신앙에서 이탈하는 현상을 국가 쇠퇴와 하나님의 버림의 징후 중 하나로 언급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롬 1:21–22, 26)

존 맥아더는 이에 대해 “여성들이 먼저 언급된 것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여성이 도덕적 붕괴의 마지막 단계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존엄, 존중, 포용이라는 가치를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비극은, 그 가치들이 사실상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에 있다. 반대로, 그 가치들은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태어난 약육강식의 좌파 이념과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리베카 맥러플린 박사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역사학자 톰 홀랜드가 『도미니언』에서 말했듯, 예수의 전복적 윤리는 인간의 사고에 깊이 각인돼 오늘날 우리는 보편적 인권, 약자 돌봄, 정의, 남녀 평등을 상식처럼 여긴다. 그러나 로마인은 이를 비웃었을 것이다… 이 원칙의 기원은 프랑스혁명도, 계몽주의도 아닌 성경에 있다.”

이 사실이 참이라면, 오늘날 기독교를 거부하는 여성들이 결국 자신들이 말하는 가치를 실제로 구현하고 가르친 유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게 되기를 바란다. 예수와 함께하는 선택은 결코 잘못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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