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맞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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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목사(세인트하우스평택)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요즘 대중문화는 유난히 ‘복수’에 관대하다. 드라마 모범택시가 보여주는 대리 복수는 통쾌하다. 법이 외면한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를 응징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쾌감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질문의 다른 이름이다. “정의는 과연 작동하고 있는가.”

복수 대행 서비스가 허구에 머물지 않고 강한 공감을 얻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냉혹한 현실, 학폭과 조직폭력, 권력형 범죄 앞에서 피해자들은 법의 언어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 복수는 본능적 악의가 아니라,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마지막 언어다. 사람들은 복수를 원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기대할 정의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복수에 기대게 된다.

그러나 복수는 문제를 끝내지 못한다. 순간의 쾌감과 대리 만족은 남기지만, 폭력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힘은 또 다른 힘을 낳고, 약자는 다시 약자를 향해 분노를 전가한다. 조폭 사회와 학교폭력, 보복 정치가 반복되는 이유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보복의 언어 역시 같은 논리 위에 서 있다. 복수는 정의를 닮았지만, 정의를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는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노숙인과 노인을 위해 무료 급식을 이어가는 공동체,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견디는 호스피스, 외딴 섬에서 가난한 이들과 생을 나눈 문준경 전도사, 가장 버려진 자리에서 인간의 존엄을 일으켜 세운 성녀 데레사, 권력의 정상에서 내려와 망치를 들고 집을 지은 지미 카터의 해비타트 운동까지. 이들은 처벌 대신 돌봄을, 응징 대신 회복을 선택했다. 복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대안은 더 강한 폭력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이었다.

이 지점에서 세계적인 문명비평가들의 말은 복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분명한 좌표를 제공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공공 지식인 코넬 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정의란 사랑이 공공의 영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정의는 차가운 판결문 속에만 있지 않다. 사랑이 사회 구조 속에서 제도와 정책, 공동체의 태도로 구현될 때 비로소 정의는 현실이 된다. 복수는 개인의 분노를 해소할 수는 있어도, 사회를 치유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이 문장은 정확히 짚어낸다.

미국 시민권 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더 단호했다.
“나는 무장하지 않은 진리와 무조건적인 사랑이 결국 현실에서 마지막 말을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는 폭력과 억압에 맞서 싸우면서도, 폭력의 언어를 답으로 삼지 않았다. 복수가 단기적 승리를 줄 수는 있어도, 역사를 바꾸는 힘은 진리와 사랑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명비평가 이어령 역시 같은 통찰을 남겼다. 그는 “문명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인간을 구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힘이 아니라 공감이었다”고 말했다. 문명의 진보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든 것은 언제나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었다는 지적이다.

이 세 사람의 말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나왔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복수는 이해될 수 있으나, 대안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정의는 응징의 강도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약자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모범택시는 답이 아니다. 그러나 그 드라마가 던진 질문은 정직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약자의 편에 서 줄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사회와 공동체, 종교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복수가 유행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분명히 물어야 한다. 힘의 논리에 설 것인가, 아니면 사랑이라는 더 어렵고 느린 길을 감당할 것인가.

복수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교묘한 응징이 아니라, 악을 멈추게 할 용기 있는 선(善)이다. 역사는 이미 증명했다. 세상을 바꾼 것은 복수의 칼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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