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칼빈학회, ‘칼빈과 설교’ 통해 말씀선포와 교회공동체의 본질을 묻다

백석대 건학 50주년 기념 정례발표회서 멜란히톤 설교학과 초기 교회의 환대 정신 조명
한국칼빈학회 제1차 정례발표회 참석자 기념 사진. ©한국칼빈학회 제공

한국칼빈학회(회장 장훈태)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백석대학교 비전센터에서 ‘칼빈과 설교’를 주제로 백석대학교 건학 50주년 기념 제1차 정례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행사는 백석대학교 건학 50주년 준비위원회의 후원으로 마련됐으며, 종교개혁 전통 속에서 설교의 의미와 교회의 공공성을 신학적으로 재조명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학계와 교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설교 신학과 교회 윤리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 멜란히톤의 설교 이해와 수사학의 한계에 대한 분석

주제발표는 류성민 박사(합신대)가 맡아 ‘멜란히톤의 설교학: 설교와 수사학의 관계와 설교의 독특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류 박사는 종교개혁 1세대 신학자 필립 멜란히톤의 생애와 사상을 개괄하며, 그의 설교 이해가 종교개혁 신학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설명했다.

류 박사는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은 대표적인 종교개혁 신학자이자 중등·고등 교육 개혁을 이끈 인물”이라며 “‘독일의 선생님’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학문 분야의 교과서를 집필한 학자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멜란히톤이 종교개혁 예배의 핵심 요소이자 신학 전파의 주요 수단인 설교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는 점은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멜란히톤은 설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하나의 체계적인 설교학 저술로 남기지 않았다”며 “이는 멜란히톤이 자신을 설교자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는 스스로 설교를 할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 설교를 위한 도구로서의 수사학과 신학적 재구성의 시도

류 박사는 “멜란히톤이 목회자 양성기관의 교수로서 설교자들을 위한 성경 해석과 전파의 지침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며 “설교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를 제공하고자 했으며, 초기에는 전통적 수사학에서 그 모범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멜란히톤은 수사학이 설교의 본질에 온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인식했고, 이후 이를 수정해 나갔다”며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며, 이에 걸맞은 전개와 설명의 형식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관심은 중세 성례 중심 예배를 비판하고, 말씀 선포를 예배의 핵심으로 회복하려 했던 종교개혁 신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종교개혁은 설교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했고, 동시에 설교를 통해 종교개혁 교리를 전파했다”며 “하나님 말씀의 선포가 예배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설교는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설교 없는 예배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했다.

◆ 설교의 교육적·권면적 기능과 비정형적 특성

류 박사는 “설교자가 바른 교리를 전파할 뿐 아니라, 성도들이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해야 했기 때문에 설교의 교육적 기능과 권면적 기능은 필수적 요소였다”며 “멜란히톤의 설교 이해는 지식 전달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인문주의적 도덕 강조는 뒤로 물러나고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이 중심에 놓이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멜란히톤은 주해적·해석학적 체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했고, 동시에 교리 전파를 위한 방법론적 지침도 제시해야 했다”며 “이를 위해 논리학과 수사학의 원리를 활용했지만,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신학의 표현 형식으로 재구성하려 했다. 이러한 시도는 당시 유행하던 성경 4중 해석을 극복하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류 박사는 멜란히톤 설교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통일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그의 설교 이해는 시대에 따라 강조점이 변화했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낭독과 교리, 권면이라는 유연한 틀로 정리됐다”며 “그러나 멜란히톤은 이를 고정된 형식으로 제도화하지 않았는데, 이는 설교가 성경 말씀을 성도의 삶에 적용하도록 가르치고 권면하는 살아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성령의 역할과 설교의 필연적 다양성

류 박사는 “멜란히톤의 설교학이 핵심적 뼈대를 지니면서도 외형은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며 “이는 설교에서 성령의 역할이 필수적이며, 설교의 재료인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간이 제한할 수 없는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시편과 같은 본문은 문학적 특성과 계시적 성격이 결합돼 있어, 논리적·수사학적 도구만으로는 고정된 설교 형식을 만들기 어렵다”며 “다양한 청중의 상황과 필요 역시 설교가 정형화되기 어려운 이유로 제시됐다”고 했다.

아울러 “멜란히톤의 후기 설교 이해를 중심으로 낭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고, 교리를 통해 청중을 교육하며, 삶의 적용을 통해 궁극적으로 위로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구조를 설명하며,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를 구원으로 이끄는 통로”라고 했다.

◆ 초기 교회의 환대와 공동체 확장의 윤리적 동력

이어진 자유발표에서는 이춘성 박사(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가 ‘환대 실천과 공동체 확장의 메커니즘: 1-5세기 초기 교회 성장에 대한 윤리-사회적 분석’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박사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사회적 신뢰 하락과 공적 역할 축소라는 이중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며, 초기 교회의 환대 실천이 갖는 의미를 조명했다.

그는 “초기 교회가 환대를 단순한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신성한 소명으로 이해했으며, 이는 교회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였다”며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로마 사회의 종교 다원주의적 환대를 거부하고, 내부적으로 급진적인 환대를 실천하는 이중 구조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했다.

◆ 급진적 환대가 만든 공적 증언과 교회의 성장

이 박사는 “여성과 남성, 노예와 자유인, 유대인과 이방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공동체에 포함된 사실이 당시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급진적 실천이었다”며 “이러한 환대는 교회를 ‘사회 안의 또 다른 사회’로 형성하게 했으며,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공적 증언의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고 했다.

이어 “데키우스 황제(Trajan Decius, 재위 249-251) 시기 박해 이후 전염병이 확산됐을 때, 키프리아누스(Cyprianus)와 디오니시우스(Dionysius)가 보여준 환대와 자선의 실천은 기독교 윤리를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러한 실천은 결국 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졌으며, 북아프리카 교회의 교세 확장은 그 대표적 사례로 제시됐다”고 했다.

이 박사는 황제 율리아누스(Julian the Apostate)가 기독교의 환대를 모방하려 했으나 실패한 사례를 언급하며 기독교 환대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교리적 정체성에 기반한 실천이었음을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날 한국 교회가 초기 교회의 환대를 통해 정체성과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초기 교회가 제도나 정치적 후원 없이도 급진적 환대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얻었듯, 오늘의 교회 역시 먼저 환대하는 공동체로 회복돼야 한다”고 전했다.

행사는 종합토론과 총회, 폐회 순서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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