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국 산업에 기여하지 않는 반도체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발표한 것으로, 미국 내 산업과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반도체 및 그 파생 제품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14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 가운데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반도체 연구개발, 스타트업 육성 등 미국 산업 생태계에 활용되지 않는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을 단순 경유해 중국 등 제3국으로 재수출되는 반도체 역시 관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조치는 15일 오전 0시 1분(한국시간 오후 2시 1분)부터 미국에 반입·반출되는 제품에 적용됐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당장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
이번 조치와 관련해 국내 반도체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부 관세 대응 조직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자사 실적과 공급망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국내 기업들은 미국 수출 시 별도의 상호관세를 부담하지 않고 있으나, 향후 관세가 본격적으로 적용될 경우 원가 상승과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공급하는 주요 반도체 제품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이라는 점에서 직접적인 관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제품은 대부분 미국 내 AI 서버와 대형 데이터센터에 사용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미국에 기여하는 반도체’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HBM과 서버용 D램은 엔비디아, AMD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구축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미국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만으로는 관련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해당 제품군이 관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관세 확대 가능성은 여전한 변수
다만, 미국 정부가 향후 관세 적용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점은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관세 조치와 관련해 90일 이내에 그 효과와 현황을 보고받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관세 부과 결과에 따라 세율을 추가로 인상하거나 적용 품목을 늘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다른 변수로는 엔비디아가 중국에 수출하는 AI 칩 ‘H200’이 이번 25% 관세 대상에 포함된 점이 거론된다. 해당 칩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엔비디아가 관세 부담을 부품 공급사에 전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국내 기업들의 HBM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중장기 대응 전략 마련에 촉각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당장 국내 기업들이 이번 조치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정책 방향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관세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과 가격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기업 차원의 선제적 대응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관세 정책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업계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