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피터 라이너스의 기고글인 '실패가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가'(How failure can lead us to closer to God)를 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피터 라이너스는 영국 4개 지역 전반에서 얼라이언스(Alliance)의 옹호(advocacy) 팀과 사역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공적 영역에서의 신앙 실천에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조 프로스트(Jo Frost)와 함께 ‘비잉 휴먼(Being Human)’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전에는 벨파스트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 칼리지(Regent College)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현재 해당 기관의 이사회 이사로도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매년 1월 1일 아침이면 필자는 마치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처럼 깨어난다. 올해는 드디어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더 많이 마시고, 아침 메뉴를 떠올리기도 전에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1월 9일쯤 되면, 인터넷은 친절하게도 이날이 ‘포기의 날(Quitter’s Day)’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 설명은 꽤 정확하다. 그 무렵이면 헬스 가방은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가 있고, 기도 노트에는 진심 어린 기록이 딱 세 줄 남아 있으며, 휴대폰은 “의도가 좋았으면 포기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검색 기록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의 날’이라는 표현은 다소 극적으로 들리지만,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불과 9일 만에 우리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에는 아주 인간적인 면이 있다.
새해 결심이란 원래 그렇다. 더 나아지고 싶고, 더 거룩해지고 싶고, 더 생생하게 살고 싶다는 진짜 열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더 다듬어진 ‘미래의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조용한 믿음이 그 안에 숨어 있기도 하다. 마치 은혜가 잠시 보류 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포기의 날이 되면, 아마 많은 이들이 낙담했을 것이다. 단순히 실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실패가 우리의 신앙을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충분히 진지하지 않아서, 충분히 절제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1월 9일의 필자를 보고 놀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누구와 함께 일하고 계신지 정확히 알고 계셨다.
우리가 충분히 자주 말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능성’을 현재의 모습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침내 결심을 지켜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포기하는 존재인지 아시면서도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셨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포기할 때조차도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내려놓음이다. 그리고 내려놓음에는 연약함이 전제된다. 비틀거림이 전제된다. 동기부여보다 훨씬 더 자주 자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전제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변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대로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최고의 의도를 가지고 결심을 세웠다가,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침대가 거룩함보다 따뜻하다는 이유로 기도 알람을 미루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모습을 보고 눈을 굴리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어쩌면 ‘포기의 날’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날일지도 모른다. 1월 9일은 우리가 슈퍼히어로인 척하는 것을 멈추고, 타락한 제자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는 날일 수 있다.
올해 우리의 결심이 생산성 목표보다는 기도에 더 가까운 형태라면 어떨까? “매일 30분 동안 방해 없이 기도하겠다” 대신 “매일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겠다. 그리고 잊어버리면 다시 시작하겠다.” “이 죄와는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 대신 “이 싸움을 더 빨리 빛 가운데로 가져오고, 더 빨리 도움을 구하겠다.” “올해는 드디어 나 자신을 고치겠다” 대신 “올해는 하나님이 실제의 나를 만나도록 허락하겠다.” 이것은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은혜가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기준을 두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최적화해 주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일관성 없음, 인간의 연약함, 인간의 포기 속으로 직접 들어오셨고,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성도들이 성도가 된 이유는 영적 목표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실패 후에도, 부끄러움 뒤에도, 다시 또 다시 “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비를 통해서 말이다.
베드로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나은 결심 시스템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며 가장 중요한 순간에 포기한 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용서와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를 부끄러움으로 맞이하지 않고, 아침 식사와 두 번째 기회로 맞이하셨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이미 무언가를 포기했다면, 환영한다. 정확히 제때 온 것이다.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결심이 도움이 된다면 세워도 좋다. 구조는 선물일 수 있고, 훈련은 거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구원자로 삼지는 말라.
올해 가장 용기 있는 결심은 ‘인간으로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룩함을 연기하는 일을 멈추고, 정직을 연습하는 것. 연속 기록보다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1년에 한 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름답고도 어처구니없으며 희망으로 가득한 진실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포기의 날’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