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학교복음병원(병원장 최종순)은 최근 병원 내 장기려기념암센터 대강당에서 장기려 박사 서거 30주기를 맞아 기념예배와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장기려기념사업회, 학교법인 고려학원, 고신대병원, 고신의대·간호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그의 삶과 유산을 기렸다.
행사는 1부 예배와 2부 기념식 순으로 진행됐다. 예배에서 예장고신 총회장 최성은 목사는 장 박사의 신앙과 인격, 섬김의 유산이 한국 사회에 남긴 영적 영향력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한 삶이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기념식에서는 최종순 병원장과 정영호 고려학원 이사, 손봉호 장기려기념사업회 이사장, 김관선 산정현교회 담임목사가 차례로 기념사를 전했다.
특히 장 박사의 제자 양승봉 박사는 네팔‧베트남 등지에서 의료선교를 이어온 경험을 소개하며 장 박사의 정신이 국경을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증언했다.
장기려 박사는 한국 의학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평양 김일성대학교 외과 교수로 활동하다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피란해 1951년 천막 진료소를 열어 가난한 환자들을 돌본 이래, 고신대복음병원 설립과 국내 외과학 발전에 헌신했다. 1959년 국내 최초로 대량 간 절제술을 성공시키며 한국 외과 기술의 기반을 닦았고, 1968년에는 한국 첫 사설 의료보험조직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해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시발점이 됐다.
가난한 환자들을 향한 헌신은 신앙적 사명감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 시절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 등을 배출한 산정현교회 신자였던 그는 도망갈 방법이 필요했던 환자의 야반도주를 직접 도왔고, 자신의 월급을 떼어 치료비로 사용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 봉직한 뒤 은퇴하면서는 병원 옥상 옥탑방에서 지내며 검소한 삶을 이어갔다. 1995년 세상을 떠날 때 그가 남긴 전 재산은 1500만 원에 불과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장 박사의 삶은 의술과 신앙을 결합한 인술의 표본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1979년 라몬 막사이상(평화·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헌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종순 병원장은 “장 박사님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가난한 환자를 위한 병원이라는 설립 정신을 되새긴다”며 “의료기술과 나눔의 정신을 함께 실천하며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