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이 날은 평택이 산업도시의 외피를 넘어 문화도시로 새롭게 도약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동안 평택은 삼성 반도체가 자리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요충지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가 있는 군사도시, 국내 대표 수소도시, 그리고 인천항의 1.5배에 달하는 물동량을 자랑하는 평택항을 품은 산업·물류 중심 도시로 인식되어 왔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평택의 변화는 눈부시다. 인구는 두 배 가까이 증가해 65만 중도시로 성장했고, 산업과 기반시설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속도만큼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은 충분히 해소되지 못했다. 특히 세계적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을 담아낼 공간의 부재는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택아트센터의 준공과 개관은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개관식에는 정장선 평택시장을 비롯한 내빈과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평택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이 그 서막을 열었다. 국악과 서양음악이 어우러진 퓨전 연주, 국악 선율에 맞춰 펼쳐진 스포츠댄스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인상 깊게 보여주었다. 특히 우리 민족의 고난과 극복의 역사를 폭발적인 에너지로 풀어낸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단의 협연은 객석의 심장을 뛰게 했고, 국립합창단과 평택청소년합창단이 함께 부른 <평택 아리랑>은 문화도시 평택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완성했다.
필자는 오랫동안 지역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시민의 지식 기반을 떠받치는 도서관의 변화를 지켜봐 왔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오늘의 평택은 분명 다른 도시다. 그러나 도시의 성장은 산업과 일자리, 주거 공간의 확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외형의 성장에 상응하는 내적인 성숙, 곧 문화적 깊이가 함께 자라야 한다. 시민이 세계의 문화와 직접 호흡하고 교류할 수 있을 때 도시는 비로소 ‘살기 좋은 곳’을 넘어 ‘머물고 싶은 곳’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개관 기념 공연 라인업은 놀랍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조수미 초청 공연, 신년의 국립합창단 공연, 정명훈 지휘자와 세계적 관현악단,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협연까지. 여기에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빈소년합창단의 신년음악회가 더해진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평택이 세계 문화와 접속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람은 의식주만으로 행복할 수 없다. 기본적 삶이 충족되면 문화적 욕구는 필연적으로 고개를 든다. 이를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사회는 정치적 갈등이나 저급한 향락문화로 기울기 쉽다. 개발도상국 시절을 지나오며 우리가 경험한 그림자이기도 하다. 이제는 잠재된 문화적 에너지를 건전하게 분출할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K-컬처에 주목하고 있다. 수많은 해외의 젊은 세대가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이 땅을 찾는다. 과연 우리의 지방 도시는 그 물음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근 경주에서 열린 APEC 회의는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이는 단지 국제 정상의 방문 때문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과 문화적 품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화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화시민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문명비평가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창조적 소수의 문화적 응답 능력에 의해 유지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명사가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문화가 쇠퇴할 때 문명은 기술과 쾌락만 남은 껍데기가 된다”고 경고했다. 문화는 사치가 아니라 문명을 지탱하는 뿌리다.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자랑하는 시대일수록 그 위에 걸맞은 문화의 옷을 입혀야 한다. 과학은 결국 문화의 꽃이기 때문이다. 평택이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이 길 위에서, 이제 시민 모두가 그 주인공이 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