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12·3 비상계엄 및 내란 관련 의혹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 설치 법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법원행정처가 자체적으로 내란 사건을 전담해 심리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다만 재판부 구성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사건 배당 방식은 기존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고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해당 예규는 내란 등 국가적 중요 사건을 보다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심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예규 초안에는 각급 법원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내란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근거가 담겼다. 전담재판부가 다룰 수 있는 형사 사건의 범위는 형법상 내란죄와 외환죄, 군형법상 반란죄로 한정됐다. 대법원은 사회적 파장이 크고 국민적 관심이 높으며, 신속한 재판 진행이 요구되는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전담재판부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특례도 포함됐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기존에 맡고 있던 사건은 원칙적으로 모두 재배당하도록 했다. 다만 사건의 시급성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내란 등 관련 사건 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담재판부에 새로운 사건을 배당하지 않도록 했으며, 법원장이 해당 재판부에 인적·물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도 마련됐다.
반면 사건을 어느 재판부가 맡을지를 정하는 배당 방식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았다. 이는 기존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여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법안이 전담재판부 판사 추천권을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에 부여하도록 한 것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예규 제정 논의는 지난 9월 22일 서울고법이 이른바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사건의 항소심을 대비해 집중심리재판부 운영 필요성을 건의한 데서 출발했다. 이후 법원장과 각급 법원 대표 판사들, 재야 법조인들 사이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도 함께 검토됐다.
이달 초에는 각급 법원장이 참석하는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 법원 대표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잇달아 열려, 여권 주도의 내란전담재판부 법안에 대해 공정성과 사법 독립 침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가 법률신문사와 공동으로 개최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과 김선수 전 대법관 등이 사법부 스스로도 내란 사건을 신속하게 심리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해당 예규는 행정절차법에 따른 행정예고를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행정예고 기간은 20일 이상이지만, 긴급한 필요가 있을 경우 10일 이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가적 중요 사건의 항소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예규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번 예규 제정이 국가적 중요 사건 재판의 신속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과 국회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을 밝혔다. 내란전담재판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제기될 수 있는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그에 따른 절차 지연 가능성을 줄이고,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유지해 재판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법원행정처는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에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진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